권자미 시인

한 수 위 -복효근

어이, 할매 살라먼 사고 안 살라먼 자꼬 만지지 마씨요
때깔은 존디 기지가 영 허술해 보잉만
먼 소리다요 요 윗도리가 작년에 유행하던 기진디 우리 여편네도
요거 입고 서울 딸네도 가고 마을 회관에도 가고
벵원에도 가고 올여름 한려수도 관광도 댕겨왔소
물도 안 빠지고 늘어나도 않고
요거 보씨요 백화점에 납품하던 상푠디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이월상품이라고 여그 나왔다요
형편이 안 되먼 깎아달란 말이나 허제
안즉 해장 마수걸이도 못했는디
넘 장사판에 기지가 좋네 안 좋네 어쩌네
구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허들 말고
어서 가씨요
-뭐 내가 돈이 없어 그러간디 나도 돈 있어라
요까이껏이 허먼 얼마나 헌다고 괄시는 괄시오
팔처넌인디 산다먼 내 육처넘에 주지라 할매 차비는 빼드리께
뿌시럭거리며 괴춤에서 돈을 꺼내 할매 펴보이는 돈이
천원짜리 구지폐 넉 장이다
-애개개 어쩐다요
됐소 고거라도 주고 가씨오 마수걸이라 밑지고 준줄이나 아이씨요잉
못 이긴 척 배시시 웃는 할배와
또 수줍게 웃고 돌아서는 할매
둘 다 어금니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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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체로 써진 이 시는 구수한 전라도사투리가 시의 재미를 한층 더합니다. 능치고 너스레를 떠는 흥정의 모습은 연륜이 주는 간과라고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감이랄까 소통이랄까 요즘 마트나 백화점에 정가가 붙어있거나 바코드가 찍혀 있는, 일원의 에누리도 없는 물건을 살 때 하고는 확연히 다른 리얼리티가 생생히 살아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귀한 풍경입니다. 기지(옷감)를 흠 잡는 할매와 마수걸이를 명분 삼아 팔천 원짜리 옷을 사천 원에 파는 할배 사이 반꺾기 식 거래에 누구하나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듯 서로가 흡족해 보입니다. 이 희한한 거래에서 할매와 할배 중 누가 더 한 수 위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더 한 수 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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