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면 남대리 임순경 할아버지

 

 젊은시절, 영주여객 버스 운전 20년
14가구였던 우리마을, 10가구가 빈집

▲ 평범했지만 소중한 기억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아늑했던 고향집이 그리워진다. 내가 태어나고 반평생을 살아왔던 남대리에는 그저 평범했지만 무척이나 소중한 기억들이 담겨져 있다.

1952년,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나갈 무렵 산꼭대기에 있는 공기 맑은 남대리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 가족은 방 2칸이 있는 집에서 1칸 당 6~7명씩 부대끼며 잤다. 가난하던 그때, 나의 유년기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었던 날보다 못 먹고 굶은 날이 더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정비가 되어 우리는 농사를 재개했다. 화전으로 땅을 일구어 농작물을 길렀으며 고추와 오미자, 옥수수 등을 길러 수확했다. 또한 뒷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기도 했다. 수확한 약초와 농산품들은 장에 나가 사람들에게 팔았다. 남대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장이 부석의 장날인데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했기에 왕복 16km를 도보로 갔다 왔다. 그날은 한 달에 먹을까 말까 하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 눈을 감으면 아른거리는 그 시절
남대리의 유일한 학교는 남대리 국민학교다. 내 나이 11살 때 학교가 우리 마을에 처음 생겼다. 그전에는 농사일을 돕거나 놀았는데 학교가 생기니 친구, 형제들과 함께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각자가 다른 나이라고 해도 똑같이 1학년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다 같은 동급생들이 되었다. 나 보다 위인 큰 형도, 나 보다 아래인 동생들도 같은 1학년이었다.

학교는 대부분 오전 중으로 수업을 마쳤다. 나는 형제들과 근처 개울로 가서 가재를 잡았다. 자연이 오염되지 않아 물을 보면 바닥이 그대로 보여 가재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도구 하나 없이 가재와 작은 물고기, 다슬기 등 많이 잡았는데 집으로 가져가 끓여 먹기도 했다. 요즘 애들은 이 자연을 느낄 수 있을런지나 모르겠다. 정말 좋았는데 말이다. 학교는 11살 때 입학하여 모든 과정을 끝마치고 17살 때 졸업을 하였다. 남대리 국민학교 제1회 졸업생 임순경, 1회 졸업생이라니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형제들과 함께 졸업을 했다.

그때의 어머니 사랑은 우리 가족이 입었던 옷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자투리 천과 큰 천끼리 덧대어 바느질을 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다. 7남매의 옷을 어머니 혼자 만드시느라 어머니의 손은 남아날 날이 없었다. 지금 어머니의 손을 보면 많이 거칠어졌고 갈라졌지만 인생의 세월이 나타나는 아름다운 손이다. 사회에 나가 살면서 가족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일 연락하고 싶고 만나러 가고 싶은 것이 가족들인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말이다.

▲ 변하는 세상 속에서
새마을 운동이 끝나고 나는 반평생을 살았던 곳을 떠나 영주로 갔다. 힘든 일들을 도맡아 했었는데, 제일 오래한 것은 영주여객에서 20년 동안 버스 기사 일을 한 것이다. 운전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버스에서 타고 내릴 때마다 “감사합니다”라며 인사 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어떻게 보면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볼 수 있는 버스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손님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익숙함에 속아 힘들었던 그때를 잊지 말자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굶주렸던 그때를 잊고 지금 주어진 상황에만 충실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라도 마음을 비우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우리 마을에는 14가구 중 10가구가 빈집으로 남아있다. 옛날에는 서로서로 모여 반상회도 하고 친목회도 열었는데 지금으로는 꿈도 못 꿀 얘기인 것 같다. 시끌벅적 했던 마을이 조용해지니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푸른 산에 둘러싸여서 조용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박상아 청소년 기자(영주여고 1년)

* 본지는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은빛 인생’과 함께 10대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꿈을 응원하는 ‘너의 꿈을 응원해’ 라는 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바랍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