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 담아가는 김종길 화백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체 82.4년을 산다. 남자는 79.0년, 여자 85.5년이다. 1970년부터 매년 평균수명은 5.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점점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김종길 화백
갤러리 전경
갤러리 내부 전시 모습

느린 걸음으로 걸어온 화가의 길
갤러리 열어 문화공간으로 활성화
어느 날 만난 한 폭의 그림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거나 강렬한 색채에 이끌려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런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영주에도 생겼다.
안정면에 위치한 영주시립노인전문요양병원으로 가다보면 ‘GALLERY 吉 GIL’이란 간판이 있는 최신 건물이 나온다. 정적인 공간, 여유로움과 사색으로 머물 수 있는 이곳에는 그림으로 풀어낸 화가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갤러리를 만든 김종길(63.전 봉화교육지원청 교육장) 화백을 만나 인생2막의 삶을 들어봤다.

 

▲교실벽면에 걸린 그림들
그는 풍기가 고향이다. 교육대학을 진학하기 전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1979년 부석초에서 교사로 첫 근무를 시작하고 잠시 울릉도와 울진군에서 5년여를 지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주 관내와 인근 봉화에서 학생들과 함께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봉화교육장으로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림과 함께 살아가게 될 삶을 그리며 갤러리를 심사숙고 끝에 열었다.

인생의 2/3를 교육자로 살아온 그는 언제부터 그림을 마음에 담았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그림을 생각한 시점은. 미술시간이 있는 토요일이면 담임선생님이 50명 학생들 중 잘 그린 그림 10개를 선정해 매주 교실 뒤 벽면에 걸었어요. 월요일 아침에 등교를 하면 볼 수 있는데 내 그림이 자주 걸려 있었죠. 그래서 월요일에는 걸린 그림을 보는 즐거움에 일찍 등교했었어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학교에 미술전공 교사가 없어 묻기도 어렵고 집안형편도 어려워 미술학원은 생각할 수 없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 들어간 교육대학이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시점이 됐다.

“미술과 교수님이 매주 3점씩 그림을 그려 제출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1학기 60점 정도를 그렸죠. 그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후에 그림을 그렸지만 화가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완행버스 화가의 삶
그는 스스로를 ‘완행버스 화가’라고 말한다. 남들보다는 느리지만 물감과 붓은 멀리하지 않으며 화폭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시간, 금전, 여가, 친교에 어려움이 있어 10년 이상을 버티는 일이 드물다는 그는 자신도 한 집안의 가장이자 사회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림에만 열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화가로 불리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자신을 ‘완행버스’라고 빗대어 말한 이유는 또 있다. 추천작가, 초대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까지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북미술대전이 1년에 1번 열려요. 이 대회에 10번 입선을 하면 추천작가가 되고 추천작가로 3년 이상이 되면 초대작가로 활동할 수 있죠. 경북미술대전은 여러 번 도전해도 수상이 어려워요. 제겐 수상보다 그림을 그리면서 경북미술대전에 출품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었죠”

그는 매년 대회에 출품작을 냈고 7번 낙선하고 8번째 입선할 수 있었다. 이날의 입선도 관심 있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림공부를 시작한 지 30년을 넘겼고 지천명을 넘어서야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어요. 항상 선배들이 작품 활동에 좀 더 열정을 내라고 늘 독려도 했지만 순응하지 못했죠. 그래도 지금까지 붓을 놓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장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해요”

30년 동안 그려왔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고통이, 그림을 그리는 고통보다 더 커질 때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그리다만 그림도 많다.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그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 그림들이 갤러리에 걸렸다. 그와 비슷한 많은 예술적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을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했다.

 

▲그림으로 여는 인생2막
그에게 갤러리는 오래 전부터 가진 막연한 꿈이었다. 그 꿈을 그는 이뤘다. 1년 전 퇴직하고 가장으로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면 이제는 진정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된 것이란다.

“내 인생의 후반전은 이전의 성공을 지향하는 삶을 넘어 가치를 지향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어요. 나는 삶이 운동 경기와 같다고 생각해요. 운동 경기에 전후반이 있듯이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고 봐요. 그리고 휴식과 전략을 위한 하프타임이 주어지는데 퇴직 후 지난 1년은 인생의 하프타임이 주어진 것이죠”

그는 인생 최고의 피날레는 후반전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인 하프타임을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생각하고 준비해 인생의 후반전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인생의 전반전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후반전에서 멋지게 역전승 하고 싶어요. 이는 성과 위주의 인생에서 행복추구의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앞으로 ‘예술’이라는 가치지향의 삶을 추구하며 만든 자신만의 터전이 바로 갤러리 ‘吉(길) GIL’이다. 예술문화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그는 ‘쉼’이 있는 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교직에 들어와 교육장으로 퇴직하기까지 40여 년간 그림을 놓지 않고 서양화가라는 자리에서 섰지요. 이제는 그림을 그리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싶어요.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 작은 의자도 놓고 차 한 잔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그는 미술을 통한 아동심리치료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다. 3~6개월 과정으로 1점의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하고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인터뷰 중 그는 1993년 교육에 대한 연구대회 전국대회에 나가 1등급을 받았던 자료를 꺼내보였다. 이는 아동심리치료를 위해 미술치료를 접목한 후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아동이 그린 그림의 색채, 형태, 내용 등의 구성요소를 통해 심리를 분석한 후 상담하고 진단, 처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루에 한, 두 사람이라도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오면 만족해요. 지금까지 주로 풍경이나 정물을 그렸는데 앞으로는 현실세계의 대상을 재연해서 심리적인 부분을 첨가한 추상적인 면을 그림에 접목해보려고 해요. 심장이 멎는 그날까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열심히 캔버스에 담고 싶어요.”

‘갤러리 길’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제1전시실(2층), 창작공간과 제2전시실, 사무실 및 세미나실(3층), 정원 등으로 꾸며져 있다. 성인 유화교실, 미술 체험교실, 엄마와 함께 하는 미술학교 등 프로그램을 개설할 계획이다. 관람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일.월요일 제외)까지 가능하다.

한편 교육장으로 퇴직한 김종길 화백은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해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 학사, 영남대학교대학원 미술교육학 석사, 동양대학교대학원 경영학 박사로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개인전 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3회, 경북미술대전 심사위원·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신작전 회원, 한국미협 영주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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