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영주댐 문화재단지로 옮겨질 괴헌고택

어느 계간지에 ‘사라져 가는 것들’이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우리 명절이 ‘사라져 가는 것들’의 1순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말로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면서 차례, 성묘는 뒷전으로 두고 밤새워 해외여행 계획에 몰두하는 신세대를 보면서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추석을 맞아 차례를 지내고, 조상을 섬기는 그런 본질과는 달리 ‘명절증후군’만 야단스럽게 떠들어댔던 건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한 명분 쌓기이던가?

“엄마에게는 명절증후군이라는 게 없다” 전방 주시에 온 신경을 모으는 운전자가 멀미를 하지 않는 것처럼 엄마에게는 명절증후군이 발생할 여가가 없는 것이다. 몸을 붙이지 못하는 어정쩡한 사람들이 명절증후군을 함부로 운운하는 것이지, 진짜 일거리를 움켜쥔 주인공에게는 그런 어정쩡한 몸살이 붙지를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석은 정확하게 1년에 한 번이다. 갑자생 95세 되는 노친(老親)에게도 추석은 아흔 다섯 번이나 스쳐간 셈이다. 기억에 없었던 다섯 살 유아시절을 빼고도 아흔 번은 있어야할 추석에 대한 추억도 없다. 다만, 넷째가 홍시 따러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턱을 잡아 째는 바람에 된장 싸매어 병원으로 달려가 10바늘을 꿰매던 기억밖에는….

추석의 유래는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 신앙이 그 뿌리가 아닐까? 달은 한국인에게 있어 우주론,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생활풍습 등에 걸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태양을 능가하는, 실로 ‘달 중심론’이라고 할 만한 문화였다.

예부터 한가위는 설날보다 훨씬 넉넉한 그런 명절이었다. 집집을 돌며 놀이와 음식을 즐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을 찾아드는 손님도 줄고, 너도나도 이웃나들이를 줄였다. 괜스리 시세에 처진 사람으로 낙인 될까 두려워설까? 그래서 더욱 옛날 풍경이 그립다. 그 시절 명절 때 많이 회자되던 말 ‘수구초심(首丘初心)’ 이 있었다. 짐승도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무슨무슨 산부인과나 해외 원정출산의 영향인지, 명절 의식이 희박하고, 아예 ‘민족 대이동’ 보다 ‘공항 대이동’이 더 자연스럽도록 공항으로 내달린다. 수구해외(首丘海外)로 성어를 고쳐야 할 형편이다. 고향으로 향하던 고생길,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비둘기 완행열차의 추억들은 물론, 귀성행렬을 통제하던 경찰이 휘휘 젖고 다니던 긴 장대들을 모두 「정부기록물보관소」로 이관시켰다. 짐짝 올리는 선반에까지 오를 정도로 고향 간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있던 시절, 목적지에 도착 때까지 꼼짝할 수 없었던 몸이지만 그래도 큰 불평은 없었다. 당연한 고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비좁은 틈새를 귤, 땅콩, 삶은 달걀을 가득 들고도 홍익회 직원들은 용케도 잘 빠져 다니면서 승객들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했고, 기차가 정차를 하면 가락국수를 먹겠다고 우르르 나가기도 했던 덤도 있었다. 잘 익은 홍시도, 아람 번 밤송이도 기다려주었다. 귀성길 통금 시간 넘어 도착하는 열차 땜에 발급받은 <야간통행증> 덕에 일부러 귀가길 속도를 줄여보던 별스런 재미도 이제는 없어졌다. 제분소 앞의 행렬, 이발소 차례로 선 줄 등, 켜켜이 쌓이던 추억의 줄이 이제는 끊겨져 간다.

산과 들을 뛰던 그런 추억과 형제들의 눈동자가 집중되던 그런 선물세트가 사라져 간다. ‘김영란법’인가 뭔가가 인정을 싹둑 잘라버리는 그런 ‘마른 명태법’이 되어간단다. 도둑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쌍끌이 그물 속에 살뜰한 우리민속만 사그리 청소되지 않을까 두렵단다.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등 그 많던 민속놀이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래도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던 벌초(伐草), 성묘(省墓), 차례(茶禮)라는 전통 민속은 언제까지 명을 유지할까 지켜봐야할 때가 되었다.

대신에 인천공항의 명절 출국 신기록은 해마다 수립되고 있다. 차례를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귀향길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 신세타령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조상이나 부모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되어가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조상숭배의 마음은 이미 많이 퇴색된 듯하다. 인성의 근원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아이들이 훗날 이 명절을 무엇으로 추억할지. 우리 아이들의 추억 속에 어른들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 앉게 될지 그게 궁금하다. 서로 한 젓가락 더 먹겠다고 덤벼들던 어릴 적 모습이 겹친다. 행복했던 순간에 비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 빠르다. 추석에는 동네에서 돼지를 잡았다. 부위별로 팔고 남은 내장 등을 우거지 넣고 가마솥에 삶아서 온 마을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그 국물이 정말 맛있다. 지금은 그보다 맛있는 음식들이 많지만 그때 둘러앉아 먹는 돼지내장탕 만한 게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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