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국회법사위원장이라는 사람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최근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에 대한 질의를 하자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간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질문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위원장은 사회만 보라는 박지원 의원에게 버럭 화를 내며 호통을 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는 박지원보다 6년 아래다. 안하무인의 태도다. 그의 말대로 국회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삼권분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한 장치다. 입법, 사법, 행정이 각기 독립된 기관으로 고유한 권력을 지니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권력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취지다. 국회는 당연히 사법부의 그릇된 권력행사에 대해 견제할 임무가 있다.

그런데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원의 질문을 봉쇄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는 판사출신이다. 판사의 판결은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가진다고 여기는 모양새다. 그는 과거 판사 시절 어부간첩단사건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최근 이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무고한 사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어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이분과 대조되는 효봉 스님이 떠오른다. 일제 때 조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죄책감에 엿장수가 되어 떠돌다가 스님이 된 분이다. 

우리 사법부는 거의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 우리사회는 공부 잘 하는 사람에게는 일단 주눅이 드는 경향이 있다. 그의 성품이나 가치관에 상관없이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무조건 존중하고 우러른다. 그래서 판사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 법은 힘 없고 억울한 사람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이다. 시중에서 다툼이 생겼을 때 억울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법대로 하자.’인 것도 법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말해준다.

그런데 최근 법원행정처의 문서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이 드러나면서 법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과거 지강헌 사건에서 회자되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라는 말이 범죄자의 말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여전히 사법부를 신뢰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 쌍용차 문제, KTX 여승무원 문제, 전교조 문제 등 사건에서 공정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한 검찰의 양승태 대법원 판사에 대한 영장이 모두 기각되고 있다. 사법부의 오만함이 이러하다.  

법조인들이 즐겨 쓰는 말 가운데 법리라는 말이 있다. 마치 그들만의 전유물인 양 여기는 용어다. 우리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법이다. 법리보다 중요한 것이 그 법을 만든 취지다. 법은 상식을 넘지 않는다. 사법부는 성역이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그 언덕이 무너지면 기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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