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현대화로 사과출하 날짜 지정 ‘기다림 없어’

수천 상자의 사과가 출하돼 있음에도 이를 팔려는 농민은 한사람도 없고 경매사를 둘러싼 중매인들만 잰 걸음을 옮기고 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13일 오전 8시 풍기농협(조합장 서동석) 백신지점 경매식 집하장의 풍경이다.

“사과시세가 대단히 좋은 것 같으나 외화내빈(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나 속으로는 빈곤하고 부실함)입니다”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 보던 최종열 풍기읍 금계2리 이장이 던지는 말이다. 그는 사과 100상자를 팔아봐야 2~3상자(20kg)만 20만 원 이상을 받고 나머지 중하급 사과는 7~3만원 대를 형성하면서 평균가가 4만 원대로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후에 사과를 출하할 생각으로 시세를 살피기 위해 왔다는 김태동(풍기읍)씨는 “4월 말에 내린 서리 피해와 폭염에 이은 기록적인 가뭄 등으로 사과가 굵지 못하면서 도시 소비자들이 제사용으로 찾는 3~4단(20kg/40개들이)사과는 거의 없어 돈이 안 된다”며 “물량마저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 들었고 휴전선까지 사과나무가 심겨지면서 과잉생산으로 인해 사과가 돈이 되던 시절은 지났다”고 했다.

출하를 앞두고 가격동향을 살피러 왔다는 여광웅 풍기읍 수철리 이장은 “사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추석 5일전인 17일 쯤 출하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며 “추석이 지난해에 비해 10여일 빠르면서 홍로사과가 99%”라고 말했다.

대구농협공판장과 경기도 구리공판장 등에 거래처를 두고 있다는 황정문(52) 중매인은 “물량은 충분하나 도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3~4단 사과가 거의 없어 물량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며 “상품은 매일 3~5천 원씩 계속 오르고 있지만 중하품은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시설현대화를 마친 풍기농협 백신지점 경매식 집하장은 2천여 사과농가들에게 출하날짜를 지정해 사과를 납품 받고 있다. 사과 출하 농민들이 현장에 나와 지켜보지 않아도 전국에 거래처를 두고 있는 14명의 중매인들이 사과를 팔아주고 있고 경매 즉시 경매내역을 알리는 문자와 함께 통장으로 판매대금을 입금해 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전날 오후에 사과를 출하한 뒤 경매장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추석 3일 전인 21일까지 농가들의 사과를 받기로 예정돼 있다는 김종오 백신지점장은 “품질자체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낮아지면서 대과(大果)가 거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이날 백신집하장에는 5천67상자가 출하돼 상자 당 평균 6만700원에 팔렸으나 순흥면 덕현리에서 287상자의 홍로사과를 출하한 권영동씨가 2과 3상자를 상자 당 30만원, 3과 27만4천 원을 받는 등 13만5천원의 평균가를 기록하면서 이웃농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풍기농협 백신사과집하장은 지난해에도 2천여 과수조합원들의 사과를 34만여 상자(127억원 상당)를 팔아주면서 효자농협으로 자리하고 있다.

김이환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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