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연 할머니

▲ 행복했던 삶을 뒤로하고 6·25사변이
내 나이 88살, 나는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어떤 역경에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극복하며 이 자리에 떳떳이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고향은 가깝고도 먼 이북 강원도 원산에 있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고향은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지만, 지금도 마음 한편엔 고향에 대한 진득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나는 그 당시에 여자임에도 진취적이고 열린 생각을 가지신 부모님 덕택에 국민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물론 베를 뜨고 수를 놓는 방법을 배웠으며, 친구들과 함께 공기놀이를 하거나 고무줄놀이를 하며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반짝이는 눈망울이 별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던 나의 친구들도 일본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본에 끌려 가지 않기 위해 이른 나이에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게 되었다. 그 후 얼마가지 않아 6·25가 일어났는데,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 정으로 낳은 딸들과 함께
사변이 끝난 후 애석하게도 얼마가지 않아 행복했던 결혼 생활도 끝이 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오직 남편만을 믿고, 남편을 따라 남대리로 오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남대리의 자연으로 인해 정화되어가는 나의 마음을 보게 되어 남대리를 향하는 나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드디어 힘든 여정 끝에 남대리에 도착해 남편 집의 현관을 열자 말자 맑고 순수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정으로 낳은 딸들을 보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나의 감정은 모성애인 것 같았다. 딸들 또한 나를 어머니로 받아들여 주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가슴으로 낳은 딸들과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영원한 친구처럼 지금까지도 이 곳 남대리에서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다.

▲ 자식을 위한 어매의 모성애(愛)
따뜻하고 정이 많은 가정 속에서도 ‘가난’이라는 딱지는 그 누구도 떼어 줄 수가 없었다. 가난이라는 집안 형편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한 것이 너무나도 속이 상한 나는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욱 힘들게 일해야만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즉시 이를 실행 하였다.

나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감자, 옥수수 등을 농사 지었다. 그리고 밤에는 호롱불 앞에서 베를 짜고, 길쌈을 짜며 자식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다. 그리고 장날이면 그동안 모은 것들을 팔기 위해 보따리를 한 가득 짊어지고 오직 두 다리만을 의지한 채, 점심 먹는 것도 까먹은 채 먼 길을 왔다 갔다 했다. 그 후 끊임없이 열심히 일한 결과 우리 가족의 삶에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고, 자식들 또한 나의 희생적인 노력에 힘입어 효로써, 공부로써 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게 되었다.

▲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내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이 자식들이 출세했을 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사실 그 이면에는 나의 엄청난 노력도 숨어있기는 하다. 나의 자랑인 자식 자랑을 조금 해 보자면 우선 나의 첫째 아들은 남대리의 자랑스러운 이장이 되었고, 또 그 밑에 아들은 경찰이 되어 지금은 꽤나 높은 직급에 올라가있다.

또한 귀여운 막내 아들은 광고 디자인 쪽에서 근무 하고 있는 데,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아들들이 잘 자란 것을 보기만 하여도 뿌듯하기만 하다. 나는 이렇듯 자식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오직 대견함과 뿌듯함, 기쁨만이 가득 채우게 되었다.

▲ 남대리와 함께하는 삶
어느 덧 90대로 접어 들어가려는 나는 지금 오래 전부터 펜션 숙박업 일을 하고 있다. 남대리는 맑고 쾌적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속에 청정한 계곡이 있기 때문에, 남대리로 휴가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휴양지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누군가가 무슨 날이 가장 좋냐? 라고 내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때에 나는 명절이 가장 좋다고 대답하였는데, 그 이유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정다운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시에 있는 자식들 곁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남대리는 발전한 그 어느 도시도 담지 못할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의 인정과 친밀도는 어느 곳을 가던지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정리_ 이은해(영주여고1학년) 청소년기자

* 본지는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은빛 인생’과 함께 10대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꿈을 응원하는 ‘너의 꿈을 응원해’ 라는 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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