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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 확대경[166] 뒷방늙은이, 조사당(祖師堂)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09.05 17:07
  • 호수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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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祖師堂)은 하나의 종파를 세운 사람, 후세에 길이 존경 받는 승려, 절을 창건한 이, 역대 주지 등의 진영(眞影)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祖堂), 조사전(祖師殿) 등으로도 부른다. 이른바 ‘사찰의 할아버지를 모신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조사전, 조사당은 가급적 사찰의 뒷부분 조용한 곳에 안치시켜 모시는 어른의 위엄이 손상되지 않도록 애쓴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뒷방늙은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뒷방늙은이>는 현실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듯하지만, 절을 창건했거나 종파를 연 고승을 모시는 「조사신앙」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사찰의 큰 어른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

조사당이 없는 사찰에서는 그곳 나름의 영각(影閣)을 지으며, 국사를 배출한 사찰에서는 국사전(國師殿)을 짓기도 한다. 이래서 조사당은 대개 사찰의 가장 깊은 곳이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게 되는데, 이것은 민가의 가묘(家廟) 배치나 향교와 서원의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법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찰 구조상으로도 도리천의 우주로 승화하는 길목이라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의 경우도 무량수전 뒤쪽 산기슭에 높이 얹혀 좌정하고 있다. 무량수전과 건립시기를 같이하는 고려시대 목조건물인데, 초기에는 의상조사와 역대 조사들의 영정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새로 조성된 의상조사 석고상(石膏像)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탱화를 안치시켜 사실상 『의상조사당』으로 만들었다.

본래 벽면에는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그린 6폭의 벽화(국보 제46호)가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이 벽화들은 무량수전 안에 보관되다가 지금은 다시 경내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조사당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소박하게 앉아있다. 그 흔한 장식이나 단청이 없어 더욱 청정하고 소박하게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과잉이라는 단어를 모두 배제시킨 조사당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고 세부표현이 간결한 모습인데, 정면 가운데에는 살문을, 그 좌우 옆칸에는 붙박이 살창을 달았다. 작은 창문 하나에도 황금비율을 놓치지 않았다. 눈이 시리지 않고 마음이 각지지 않는 창문이다. 옆면과 뒷면은 모두 벽으로 막혀 있다.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원기둥이고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건물 양식으로 무량수전을 닮아 있다. 그 위에는 주두를 얹기 전에 헛첨차(한옥 기둥머리 장식의 하나)를 끼워 공포를 받치고 있다. 기단은 면석과 갑석으로 조성하였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건물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간집 구조로 대들보 위에 포대공을 앞뒤로 두고 종량을 얹은 다음 사다리 모양의 대공을 얹어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대들보가 항아리처럼 불룩하지 않고 길쭉하게 표현된 것은 다른 목조건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요소이다.

전체적으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는 달리 장식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건물 내부 바닥은 본래 전돌 포장이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대치되었다. 조사당으로 향하는 길목은 무량수전 동쪽 언덕의 삼층석탑이 안내하고 있다. 석탑 뒤쪽으로 난 포장 산길을 조금 오르면 조사당이 나온다. 뒷산 숲속에 숨어 있는 조사당은 1377년에 중건된 것으로 건립 연대가 뚜렷이 밝혀진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축물이다.

무량수전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지만 조사당은 다소 딱딱한 인상이다. 무량수전 팔작지붕의 유연한 곡선에 비해 조사당의 맞배지붕은 딱딱한 직선이기 때문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따로 가설하지 않아 기둥과 보개들의 구조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구조로 지붕을 받치고 있다. 대들보의 단면은 상부가 넓고 하부가 좁아서 구조적으로 필요한 보의 역할은 다하면서 밑에서 바라볼 때는 불필요한 중량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의상이 도를 통하고 서역 천축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방문 앞 처마 밑에 당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으며 말하기를 “내가 떠난 후에 이 지팡이는 가지와 잎이 살아날 것이다. 이 지팡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줄 알라”하였다 한다. 과연 지팡이에서 가지와 잎이 돋아났는데, 비와 이슬에 젖지 않고도 햇살과 달빛만으로 자라며, 항상 지붕 처마 밑에 있으나 지붕을 뚫지는 않는다고 전해진다. 이 신비의 식물이 바로 선비화(仙扉花)이다. 학명이 골담초인 이 나무는 사철 푸르러 있기에 잎이 피거나 지는 일을 볼 수 없어서 승려들은 비선화수(飛仙花樹)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이런 내용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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