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로 심신을 수련하는 조진호 씨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체 82.4년을 산다. 남자는 79.0년, 여자 85.5년이다. 1970년부터 매년 평균수명은 5.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점점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평생농사 후 서예 시작으로 마음정화
전국대회 우수상 수상 등 실력 인정


어려움이 많지만 묵묵히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편안함보다는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땀을 흘린 만큼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생활이 궁핍할 때도, 조금 형편이 나아져도 가족들을 위해 힘을 모아서 들로,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풍기읍 금계1리 사는 조진호(78)씨도 어느 농부의 젊은 날처럼 평생을 살아오다 노년에 들어서서야 자신만의 취미를 만들어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얀 한지 위에 은은한 묵향이 담긴 붓을 들고 글을 써내려가는 그를 만났다.

▲ 평생 농업으로 한 길만
풍기읍 금계1리가 고향인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20대 초반 잠깐의 객지생활과 군대를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삼형제 중 막내인 그는 형제들과 함께 인삼농사를 지었던 부모님을 도왔다. 형제 모두 고향에서 자라 부모 곁에서 가계를 일구고 살았다.

“삼형제가 우애가 깊었어요. 부모님이 지으시던 인삼농사도 함께 도우며 큰형은 결혼해 부모님과 살고 둘째형과 나는 결혼해서 동네에서 살았지요. 지금은 위에 두 형님은 돌아가시고 후손들이 살고 있어요. 형님들이 항상 그리워요”

30세에 결혼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그는 부모님께 배운 인삼농사로 생활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배웠다고 여겼던 인삼농사는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함께 시작한 것이 과수농사였다. 토양이 좋았는지, 과수농사 실력이 더 있는지, 30년 동안 사과농사를 지으며 큰 어려움이 없이 잘 됐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결혼해 네 자매를 낳은 그는 2년 전까지 사과농사를 지었다. 2013년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아내와 딸, 사위의 걱정에 사과농사는 다른 사람에게 도지를 줬다. 그래도 밭농사는 직접 짓는다며 인터뷰가 있던 이날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오전 5시부터 밭에 나가 참깨를 손봤단다.

 

▲ 배움과 열정의 사이에서
풍기초 46회, 금계중 8회인 그는 풍기초 졸업동기들과 ‘소백46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힘든 형편에 배움이 간절했던 그에게는 이 동기모임이 애틋하고 남다른 의미라고. 이유는 풍기초는 5학년에 입학해 2년을, 금계중은 3학년에 들어가 1년을 다니고 졸업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까이 풍기북부초가 있지만 당시에는 초등학교가 한곳밖에 없었어요. 나에게는 학교와 동기들이 특별해요. 공부는 하고 싶은데 배울 수 있는 형편이 못되니 더 간절한 마음이 들었죠”

그가 교육에 대한 간절함이 컸기 때문일까.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어려웠던 생활형편에도 교육에 대한 열의는 높았다. 살아가며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자녀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시켜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다정한 반려자를 만나 잘 살고 있는 것이 너무 뿌듯하단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농사만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농사를 지으며 남의 집 일도 도와주고 공사장에 막노동도 다니고 했지요. 그때 참 열심히 살았어요”

그림을 잘 그렸던 둘째 딸이 경북도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왔던 일화를 전하던 그가 눈시울을 적시며 말을 이었다.

“당시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 시계를 받았는데 담당교사는 좋은 일에 술 한 잔 사라고 시계를 주지 않더라고요. 하루하루 살기가 빠듯한데 누군가에게 베풀 여유가 그때는 없었어요. 기쁜 마음으로는 열 번이라도 사고 싶었죠. 나중에 간신히 받았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가족 외에 그가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도 배움과 연관이 있다. 지금도 회원으로 있는 4-H본부에서 금계중 교실을 빌려 마을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때이다. 문맹퇴치운동을 벌였던 시기에 그의 젊은 날을 보람으로 채웠던 시기라고.

 

▲ 서예, 마음수련 시간
얼마 전 시내 지역에 축하현수막이 걸렸다. 그가 제14회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가족, 4-H본부 회장과 회원들도 참석해 축하해줬다.

풍기문화의집에서 서예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이곳 회원들 모임인 ‘선묵회’(회장 권태형) 일원이기도 하다. 선묵회는 1997년 창립해 2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는 2013년 이곳에서 처음 서예를 시작했다.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특별한 취미활동이 없던 그에게 친구는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서예를 권했다고.

“그때 위암판정을 받았어요. 삼성의료원에서 수술을 받고 무리하지 말고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데요. 평생 농사를 손에서 놓지 못했는데 그때 조금씩 접었어요. 아프고 나서야 쉬게 되었네요”

2006년 서예를 시작한 권태형 회장은 처음 조진호 씨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처음 서예를 시작했지만 다른 회원들과는 조금은 달랐단다. 아마도 서당에서 배운 적이 있어서인 것 같다고.

권 회장의 말에 그는 “자신이 배움에 한이 많고 배우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보니 더 배움에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며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공부가 하고 싶어 마을에 있는 서당을 다녔었는데 그마저도 오래 배우질 못했다”고 했다. 지난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배움의 길이 참 어려웠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를 대신해 권 회장이 서예의 장점을 말했다.

“예술 활동인 서예를 통해 한자와 붓글씨를 배우게 되고 무엇보다 마음의 안정을 찾게 돼요. 또 집중하다보면 잡념들이 사라져 몸을 정화시켜 주죠. 붓을 짚으면 마음이 따라 가요. 한 번 서예를 시작한 사람들은 붓을 쉽게 놓지 않죠”

서예교실을 다니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는 오래 다닌 회원들과의 격차로 수상은 어려웠다. 그러나 빠른 습득으로 실력이 늘어 대회에 출전하면 입선, 특선을 했다. 이번 수상도 회원들 대부분 특선이나 입선을 다수했지만 우수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기대 없이 참여에 의의를 뒀어요. 그런데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이 기뻤죠. 6년 전 처음 시작했을 즈음에는 입선도 부러웠는데 이젠 실력이 조금 생겼는지 좋은 일이 있네요”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는 그는 서예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적고 정신집중과 일상생활에도 좋다면서 어린 시절 배움에 대한 갈증을 여유를 찾은 노년의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면서 즐겁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풍기문화의집에서 한지와 묵향에 빠져든다. 마음에 드는 글귀를 두 줄 글씨로 써내려가는 동안은 오롯이 그만의 시간이다.

“낮 시간에 집에서 머물 때는 글을 쓰고 공부를 해요. 앞으로도 심신의 안정을 위해 서예는 계속하려고요. 그리고 나와 가족을 위해 건강도 챙겨가며 지내려고요”


김은아/윤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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