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창수(71, 하망동)

부석사(浮石寺)의 석축(石築)은 불국사(佛國寺) 석축처럼 지주를 세우지도 않았고 해인사(海印寺)석축처럼 거대한 장대석을 사용하지도 않아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하게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변화 있는 통일성을 이루고 정교함을 보여 우리나라 옛 건물 석축 가운데서 가장 특색 있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각기 다른 모양의 크고 작은 돌을 생긴 형태대로 면을 맞춰 쌓고 그 사이사이 작은 틈서리에는 자잘한 돌을 끼워 넣고 층의 형성없이 ‘막돌 허튼층’으로 쌓았다.

대개 우리나라 사찰에는 그 터의 조건에 따라 평지형, 구릉형, 산지형으로 구분이 되는데 삼국시대에는 평지가람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밀교가 전래되고 선종(禪宗)이 성행하면서 사찰은 차츰 산간을 찾아 들게 되었고 그러자니 자연 산간이나 구릉에 맞는 가람배치법이 생기게 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큰 규모의 건축이 이뤄지게 되었다.

부석사는 평지형과 산지형의 중간인 구릉형이다. 산간형의 사찰이 은둔을 위해 깊숙한 자리를 택하는 반면 구릉형은 높은 지대를 택해 그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는 형태로 지어졌다. 비탈진 구렁에 사찰을 짓는 것은 언덕배기에 터를 반듯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축대를 쌓아야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구릉형 사찰로는 불국사나 해인사, 화엄사가 대표적으로 모두 석축을 쌓았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언덕에 자리해 있는 부석사는 전각이나 누각에 문을 세우자니 자연 여러 개의 평탄한 터를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이 절에는 여러 개의 석축(石築)이 있다. 그 중에서 천왕문(天王門) 앞 석축과 범종각 앞 석축, 무량수전 앞 석축 등은 크게는 3단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지형에 따라 그 사이사이에 약간 작은 규모의 석축들이 있어 모두 9단의 석축으로 되어 있다. 크게는 상, 중, 하 3단으로 더욱 세분을 하며 9단으로 구획되어 있는 부석사의 석축은 극락정토(極樂淨土)의 구품연대(九品蓮臺)을 상징한다는 것이 옳은 말이다.

이 절의 본전(本殿)이 무량수전이요, 주불(主佛)이 무량수불, 곧 아미타불이며 무량수전의 정문격인 누문이 안양문(극락정토의 문)으로 주불(主佛)은 법당입구 정면에 봉안하는 일반적인 양식을 무시하고 법당에 들어서면 주불이 서쪽에 모셔서 동쪽을 향하여 옆으로 앉힌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를 재현하여 이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석축(石築)은 정토경(淨土經 )에 이른바 삼배구품왕생(三輩九品往生)의 교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도 잘못됨이 없지 않을까 여겨진다.

정연(整然.가지런하고 질서가 있음)하고 힘찬 모양으로 동서로 쭉~평행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석축은 부석사의 위용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가장 비중 높은 건축물의 하나다. 부석사의 석축은 고려 때 풍수설에 의해서 좌향(坐向)을 약간 돌리기 위하여 일부를 고쳐 쌓았다는 설도 있으나 오늘날 학계에서는 신라시대 창건 당시의 축조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불국사와 더불어 정교하고도 웅장한 석축 위에 세워진 구릉형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막돌 허튼 층으로 쌓아 무질서 한 듯도 하면서 짜임새를 갖춘 부석사의 석축은 소박하면서도 그지없이 장려(壯麗)하여 석축하나를 보기 위해서도 천릿길이 멀지 않을 만큼 보배로운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영주에서는 부석사 석축에 대한 홍보가 재대로 되어 있는가를 뒤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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