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210] 풍기읍 성내4리 ‘서문거리’

예전에 한양·죽령으로 통하는 큰 길 ‘서문거리’
유(兪)다리의 전설, 주세붕군수선정비, 심우원

서문거리 마을 전경

 

인삼축제고유제

 

유다리의 전설

성내4리 서문거리의 위치
성내4리는 풍기 관문인 남원교(南院橋,나만다리)를 건너 십자거리로 들어가는 길 서편(왼쪽), 십자거리에서 서문거리로 가는 길(기주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성내4리에는 GS칼텍스, 풍기교회, 풍기호텔, 토종인삼시장, 풍기성당, 옛 비집거리, 119안전센터, 유다리 등이 있고, 인삼축제가 열리는 천변이 바로 성내4리와 접해있다. 지난달 12일 성내4리에 갔다.이날 마을회관에서 김도진 이장, 이관순 노인회장, 석춘화 할머니, 남계옥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서문거리의 내력과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풍기·성내리
풍기는 신라 때 기목진(基木鎭)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태종 13년(1413) 기천현(基川縣)이 됐다가 1450년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됐다. 세조 3년(1457년) 금성대군 변란(정축지변)으로 순흥도호부가 폐부되자 풍기군이 순흥부 지역을 관할하다가 숙종 9년(1683년) 순흥부(順興府)가 회복되어 되돌려 줬다.

170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성내리 지역은 풍기읍성 서문 밖에 있다하여 풍기군 동부면 서문리(西門里)가 됐다.

1914년 일제(日帝)에 의한 행정구역을 개편 때 풍기군·순흥군·영천군이 영주군으로 통폐합되면서 영주군 풍기면 성내리가 됐다. 1973년 풍기읍으로 승격되고, 1980년 영풍군 풍기읍이 되었다가 1995년 영주시 풍기읍 성내4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도진 이장은 “성내4리는 풍기읍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기인삼축제가 열리는 남원천변과 인접하고 있는 마을”이라며 “풍기읍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600여호에 1,300명이 사는 큰 마을”이라고 말했다.

풍기군수 선정비

지명유래
1414년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李珦)의 태(胎)를 은풍현 명봉산(예천군 상리면 명봉사 뒤 산봉우리)에 묻었는데, 1450년 문종(이향李珦)이 조선 제5대왕으로 즉위하자 그 보상으로 은풍의 풍(豊)자와 기천의 기(基)자를 따 풍기(豊基)라 하고 군으로 승격하면서 은풍은 풍기군에 속하게 됐다. 그 후 일제 강점기 전(1910년)까지 풍기군수가 재임했다. 성내리는 옛 풍기읍성(豊基邑城) 안에 있다고 하여 성내리(城內里) 또는 ‘성안’이라고도 하였다. 옛 성의 위치는 동쪽은 성내2리와 3리 끝 지점, 서쪽은 풍기파출소-풍기초 담장-역광장 앞까지, 남쪽은 전 우체국-성내3동 서능아파트 부근, 북쪽은 풍기초 원장-동부6리까지를 경계로 하여 돌과 흙으로 쌓은 성(城)이 있었다. 지금도 성내2,3,4리에 성의 흔적 일부가 남아 있다. 옛 읍성 서문 밖에 형성된 마을을 ‘서문리’라 하였고, 서문을 통해 한양·죽령으로 향하던 길을 서문거리라 했다.

또 풍기군수들의 선정비를 서문 밖에 세웠는데 이곳을 비집거리(碑集거里)라 불렀다. 1973년 7월1일 풍기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비집거리에 있던 선정비 16기를 풍기읍사무소 뜰 앞으로 옮겨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군수주세붕선정비(郡守周世鵬善政碑)
주세붕 군수는 소수서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산삼 공납(貢納)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삼재배를 시작한 분이다. 주 공의 선정비도 예전에 비집거리에 있었는데 1973년 읍터로 옮겼다. 금계(錦溪) 황준량 선생이 지은 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公諱世鵬 字景游 辛丑出0 歲連大飢 全活甚多 以治最 贈秩 乙巳冬 召爲國子司成 公資0寬仁 學行純熟 爲政敬老尊賢 先敎後罰 推恕施恩 興利革弊 一境愛戴 誠感心化 人興孝悌 俗歸純厚至於新先聖廟 立文成祠 振起斯文 尤有功焉 父老言 自國朝來典城者 莫能及 今爲承政院都承旨 嘉靖二十八年黃俊良撰』

“공의 이름은 세붕(世鵬)이고, 자는 경유(景游)다. 신축년(1541년)에 군수로 부임했는데 연2년 동안 큰 흉년이 들었으나 많은 생명을 구했다. 행정 실적이 가장 뛰어나다 하여 벼슬을 올려 받았고, 을사년 겨울에 성균관 사성이 되었다. 공은 천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학문과 행실이 순수하고 노숙하였다. 정치를 함에 노인을 공경하고 어진 이를 존대하며, 가르침을 앞세우고 형벌을 뒤로 하였다. 남의 처지를 이해하여 은혜를 베풀고 이로운 일을 일으키고 폐습을 개혁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받들었으며 성의에 감동되어 진심으로 변해서 효도와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풍속은 순후해졌다. 공자 모신 사당을 신축하고 문성공(文成公, 安珦) 사당을 세워 우리 유학을 진흥시킨 공은 더욱 크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개국 이래 군수로 온 사람 중에 이런 분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승정원 도승지로 있다. 가정(嘉靖) 28년 (1549년) 황준량(黃俊良) 짓다.

김성봉 씨

이 마을 김성봉(72) 씨는 “주세붕 군수는 풍기사람들이 신(神)으로 모시는 귀한 분”이라며 “주 선생 덕에 풍기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고, 풍기인삼축제 또한 선생이 주신 큰 선물”이라고 했다. 

 

 

유(兪)다리의 전설
서문거리에서 죽령방향으로 500m가량 가다보면 용천골에서 발원하여 금계리를 거쳐 내려오는 용천천(龍泉川)이 있다. 이 천을 건너는 ‘금계교’에서 상류쪽 10m에 돌(石)을 다듬어 놓은 다리가 보이는데 이 다리가 유서 깊은 ‘유(兪)다리’다.

희방사 창건 설화에 보면 「신라 선덕왕 12년(643) 소백산 연화봉 남쪽 기슭에서 두운(杜雲) 스님이 기도하고 있을 때 괴로워하는 호랑이 목에 걸린 비녀를 빼준다. 호랑이는 보은의 뜻으로 예쁜 색시를 업고와 스님에게 바친다. 실신한 처녀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스님은 경주 유 호장(兪 戶長,兪碩)의 딸이 호랑이한테 물려왔다는 사실을 알고, 처녀를 데리고 경주로 찾아갔다. -이하 생략-」 유 호장은 딸을 살려준 은공으로 절을 지었는데 자신의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하여 기쁠 희(喜)자를 써 희방사(喜方寺)라 하고, 절 아래 다리는 ‘무쇠다리(水鐵橋)’, 풍기 서문 밖에 놓은 다리는 ‘兪다리’라 하였다고 전해온다. 이 유서 깊은 유다리가 성내4리 풍기안식교회 앞에 있다.

엄영식 씨

이 마을 엄영식(73) 씨는 “유다리는 1,500년 세월에도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있었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허물어진 것을 2005년 석재를 수습하여 현 위치(금계교 위)에 복원했다”고 말했다.

 

 

예불 드리는 박태승 회장

박태승 6.25참전소년병전우회장
풍기초 맞은편(기주로 107번길) 좁은 길로 40여m 가다보면 오른편에 ‘심우원(尋牛苑)’ 간판이 보인다. 풍기불교법우회 법당이다. 이곳에는 6.25참전순국소년병영가 3,260위 위패(位牌)가 봉안돼 있는 곳으로, 6·25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 박태승(86) 회장이 1974년부터 매일 새벽 5시 소년병을 위해 예불을 올리는 곳이다.
박 회장은 “6.25 전쟁 때 17세 이하 나이로 참전했다가 순국한 소년병들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엄마’를 부르다 일생을 조국에 바쳤다”면서 “이들은 처자식도 없고 찾아 줄 사람도 없는 외로운 영령들이기에 이렇게 매일 예불을 올린다”고 말했다.‘마음을 찾는 곳’이란 뜻을 가진 ‘심우원(尋牛苑) 법당’에는 불단 왼쪽에 태극기가 있고, 그 아래 영가(靈駕) 위패를 모셨다. 주민등록증 크기만한 위패 3천260위는 법당 두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100세 건강체조

 

서문거리 사람들

서문거리 사람들
성내4리 마을회관은 시설이 현대화되고, 외부 정자로 연결이 손쉬워 4계절 활동이 편리하다. 
이관순(74) 노인회장은 “성내4리 노인회관은 풍기에서 가장 크고 시설 또한 고급형”이라며 “이장님과 부녀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좋은 경로당이 되었다. 이춘자 노인회총무의 아낌없는 봉사로 회관이 늘 즐겁고 화기애애하다”고 말했다.

이춘자 노인회총무

경로당 앞 정자에 석춘화(86)·최춘보(83)·남계옥(83)·강분녀(83)·김분순(81)최복희(79)·배갑연(79) 할머니 등 여러분들이 모여 치매예방 손가락 발가락체조를 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차 노인회관을 방문한 청하요양병원 이군섭(양방)·김숙영(한방)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100세 건강상담을 받기도 했다.

 

        

김도진 이장
이관순 노인회장
박태승 회장
석춘화 할머니

 

 

 

 

 

최춘보 할머니
남계옥 할머니
강분녀 할머니
김순분 할머니
최복희 할머니
배갑연 할머니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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