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막으로 웃음 짓는 삶[12] 이야기한자로 재능기부 하는 이주식 강사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체 82.4년을 산다. 남자는 79.0년, 여자 85.5년이다. 1970년부터 매년 평균수명은 5.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점점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꾸준함과 노력으로 도전했던 시절
한자와 함께 노년의 보람 찾아가


다른 사람과 의견, 감정, 생각, 처지 따위에 대해 서로 같다고 느끼는 부분을 공감대라고 한다. 이를 통해 대화의 즐거움도 느끼고 살아온 삶에 대해 돌아보기도 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 철도역무운수분야에 근무해 동료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여가시간을 활용해 익히고 배웠던 한자로 퇴직 이후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자 뜻풀이의 재미와 삶의 이야기로 쉽게 풀어내며 친근한 교육을 하고 있는 영주시노인복지관 이야기한자 재능기부강사 이주식(70)씨 이다. 그를 만나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들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살다

봉화군 봉성면이 고향인 그는 보따리장사를 하며 자녀를 키운 어머니의 노력으로 영주 영광고에 입학했단다. 대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에 군입대를 결심한 그는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베트남 파병에 자원했다. 가족의 걱정을 염려해 집에도 알리지 않고 말없이 부산으로 이동했다. 출발하기 전 부산에서 어머니에게 편지 한통을 썼다고.

“그때의 선택으로 돈이 생겨 생활에 보탬도 되고 지붕도 개량했어요. 그런 집에 어머니는 애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산 밑에 집이 있었는데 태풍으로 매몰돼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잠시 말문을 멈춘 그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시험을 시작한 그는 1974년 철도공무원이 됐다. 20가구만 살던 봉성면 산골에서 고등학교 졸업생도 거의 없는데 서울철도기능직시험에 합격한 그를 발령도 받기 전에 마을사람들이 역장이 나왔다고 좋아하셨단다.

그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배움에 대한 열망이 다시 시작됐다. 그래서 40대에 접어들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출석수업이 있는데 가지 못하면 지금은 대체가능하지만 예전에 꼭 출석해야했어요. 당시 철도근무시스템은 휴가도 연가도 어려웠죠. 쉬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수업이 있을 때는 대학과 회사에 사정했어요. 어려움이 많았지만 틈틈이 공부해서 6년 후 졸업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역장도 늦은 편이였다는 그는 역장시험에 도전했다. 일반직으로 계장(현 차장급) 이상이면 공개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상식, 행정학개론 등 필요과목에 대한 시험 준비를 하던 그에게 주변에서는 나이가 많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영주지방청 중에서 3명만 합격 소식을 받은 가운데 그의 이름이 있었단다.

“이왕 시작한 일에 역장도 해봤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많아 안 될 것이라고 하니 위축이 됐지요. 그러다 합격 소식을 듣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역무운수분야에서 34년 동안 근무하다 퇴직 전에는 분천역장으로 근무하고 퇴임했지요”

58세 퇴직한 그는 아내와 함께 바로 서울로 향했다. 큰딸이 서울교대를 나와 결혼해 직장을 다니고 사위가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의 뒷바라지를 위해 퇴직과 동시에 부부가 짐을 싸서 서울로 갔어요. 사위가 2번 낙방을 했는데 다른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했지요. 누구보다 부모가 큰 지원군이 아닐까요. 나는 현직에서 물러났고 환갑도 안 된 나이이기 때문에 또 즐길 시간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죠. 딸에게도, 사위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고 싶어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사위는 공부에 열중에 당당히 합격소식을 전했다. 지금은 서초동에서 군법 중심으로 한 법무법인 ‘담솔’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가 “합격하는데 조금은 힘이 됐겠지요?”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손녀, 손자를 돌보고 사위가 연수원에 있을 때까지 8년을 함께 살면서 많은 정이 들었지만 이후에는 영주로 내려와 부부가 노년을 즐기고 있단다.

 

▲재능기부자에서 지도자로

퇴직 전 현직에 있을 때 근무 외 쉬는 시간에 한자책을 펼쳐보고 있으면 직원들이 보고 묻기도 했다. 퇴직 후 딸과 함께 살던 서울에서도 그는 한자공부를 하면서 신촌에 있는 연세대학교에서 한자분야 6개월 강좌도 들었다.

“대한검정회의 한자능력시험도 봤어요. 1급을 공부했지만 시험을 처음 보는 것이라 2급을 보고 자격을 취득했는데 1급에 도전할 걸 하고 후회도 되더군요. 여가시간에는 한자 책도 보고 인터넷으로 한자공부도 해요. 일상생활이 됐지요”

그런 그가 올해부터 영주시노인복지관에서 이야기한자로 재능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취미생활로 참여한 교육생이었지만 당시 재능기부에 참여한 교수의 추천으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재능기부하는 교수님이 나를 유심히 보셨는지, 자신을 대신한 재능기부강사로 나를 추천했어요. 한자를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기에 거절했지만 같이 배운 분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한자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니 호응이 좋았어요”

사자성어를 지금의 삶에 대비해 풀었다. 나이차가 적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공감대도 많았단다. 많은 한자를 기억하고 배운다는 의미보다 스토리로 한자이해하면 기억이 오래 남는다고.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교에서는 박사, 교수가 필요해요. 하지만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 대한 공감으로 교육생들이 함께 한자를 배우고 있죠”

그는 현재 한자지도사 자격증 공부 중이다. 자격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때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노년의 여가를 즐기고 있다.

“부부가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기며 살아가니 행복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다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자녀를 위해 함께 하고 그 결과물도 좋으니 이젠 여유를 즐기면서 살려고요”

김은아/윤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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