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흰 개

 -신미나

다리 위에서
흰 개가
내 쪽을 바라봤을 때

나는 알아차렸다
그 개는 오래전에 죽은
나의 할머니인 것을

할머니는 따라오라는 듯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꿈에서도 할머니는
마르고 쓸쓸한 개

우리는 같이 걸었다
오래전에
그녀가 살았던 곳
우물 옆에 흙집
파꽃 핀 채마밭을
빨래터를 지나
언덕 위의 장로교회
논물이 반짝이는 논길을

좋겠다,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니까
이 다음을 내려놓았으니까

나는 할머니를
오랫동안 끌어안았다
품에서 흰 것이 조용히 빠져나갔다

눈을 떴을 때
따듯한 눈물이 귀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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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는 과거로 귀착한 시로 읽을 수 있지만 불귀나 소멸로 읽을 수도 있겠다. 결국 인식의 문제이다. 과거는 한 덩어리로 떼어둘 수 없는 존재이다. 현실이, 과거와 현재가 추상화처럼 혼재한다 라고 하는 시인의 말을 어느 대담에서 읽은 적이 있다.

꿈인 듯 과거인 듯 불투명한 것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꿈을 꾸다가 일어나 한참을 멍 하게 앉아 있었을 때처럼 상실감인지 허상인지도 모를 어떤 상태의 흰 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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