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6.13 지방선거 이후 매스컴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보수의 궤멸’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곳에 개운치 못한 느낌이 있다.

왜 ‘보수의 궤멸’이란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가? 어느 사회든 보수와 진보는 있게 마련인데 우리사회에 정말 보수가 궤멸되었는가? 궤멸되었다면 우리는 유럽의 진보적인 나라에서 누리는 진보적 가치를 누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말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연유인 것 같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쓰이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의미는 왜곡되어 있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면 보수라 하고, 민주당이나 정의당을 지지하면 진보라 한다. 자한당은 보수이고 민주당은 진보인가? 사회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사회에 진보정당은 정의당 정도가 거론된다. 민주당은 보수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주류는 친일파를 근간으로 한 이승만의 자유당 권력에서 비롯되어 그 흐름을 이어왔다. 그들은 반공과 안보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해 왔다. 북에 대한 적개심이나 반공을 보수의 아이콘으로 삼았다. 이들 주류에 비판적인 정치세력은 좌파 혹은 진보로 분류했다.

우리사회에는 북을 적대시하면 보수이고 북과 소통하려 하면 진보라는 그릇된 관념이 자리하게 되었다. 자칭 보수라고 하는 그들은 민주당을 진보 혹은 좌파라 하지만 사실 민주당 정권은 진보도 아니요 좌파도 아니다. 오히려 보수에 가깝다. 

6.13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섬처럼 남겨두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유한국당이 패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보수의 궤멸’이라고 하지만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는 궤멸하지 않았다. 다만 자유한국당이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자유한국당이 보수가 아니면 무엇이 보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보수의 사전적 풀이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하는 것이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백성들에게 상투를 자르라는 고종황제의 단발령이 내렸을 때 “내 목은 자를지라도 내 상투는 자를 수 없다”고 했던 최면암 같은 선비가 진정한 보수다.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을 때 ‘절명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황매천 같은 이가 보수다. 

국가권력을 동원해서 여론을 조작하여 선거에 개입하고 4대강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강을 파헤쳐서 국토를 망가뜨린 세력, 국민이 준 권력으로 개인을 위해 국정을 농단한 세력을 보수라 할 수 없다. 보수라는 말 어디에도 부도덕을 용납하라는 의미는 없다. 촛불혁명은 보수를 응징한 것이 아니라 부도덕한 권력을 응징한 것이다. 6.13 지방선거로 인해 보수가 궤멸한 것이 아니라 부도덕한 권력이 궤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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