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을 읽으면 선비의 생활을 알 수 있다. 소설은 허구지만 사회현실이 반영되므로 선비의 일상생활이 드러난다.

허생은 남산골 묵적골에 사는 선비이다. ‘남산 밑에 닿으면 우물가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해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의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라고 배경을 묘사한다. 아내가 바느질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하는 적빈에도 허생은 글만 읽을 뿐 생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루는 아내가 배고픔을 못 견뎌 울음 섞인 소리로 ‘당신은 평생 과거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라고 묻자, 허생은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했소’라고 대답한다. ‘그럼 장인바치일이라도 못하시나요.’라고 되묻자 ‘그 일은 본래 배우지 못해 할 수 없소’라고 말한다. ‘장사는 못 하시나요’라는 물음에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라고 반문한다. 아내는 왈칵 성을 내어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일도,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하고 소리쳤다.

허생은 읽던 책을 덮고 일어서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를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 년인 걸…….”

하고 문 밖으로 나가 그 길로 저자거리 운종가로 간다.

온 세계가 경제를 외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두둔할 명분은 없다. 굶주림에 허덕이면 열일을 덮어두고 허기진 배부터 불려야 한다. 쌀이랑 금전이 들어오지 않는 한 책읽기가 배 불릴 일을 넘어설 수는 없다. 허생은 책읽기에 앞서 생계를 이을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을 외면한 채 책만 읽는 허생이라면 ‘도둑질이라도 못하시나요’ 라는 끔찍스러운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먹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러나 허생은 책 읽는 선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비는 책을 읽어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다. 배를 곯아도 책은 읽는다. 십년 동안 독서를 하리라고 작심한 것을 보면 시쳇말로 가히 독서광이다. 당시의 선비들은 허생처럼 독서에 매진했을 것이다.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에도 ‘책읽기’가 등장한다. 부자인 상민이 양반이 되려고 양반의 빚을 갚아 주고 증서를 받는다. 고을 군수에게 ‘양반은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군수는 양반이 지켜야 할 덕목과 행동으로 "평명에 일어나 등불을 켜고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을 밀듯 읽어야 하며...‘ 라고 맨 먼저 해 뜰 무렵에 일어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독서를 게을리 하면 양반신분을 박탈하겠다고 말한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 19세 이상의 성인 6천명과 4학년 이상 초등학생과 중·고생 3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59.9%, 독서량은 8.3권이다. 열 사람 중 넷은 일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책을 읽는 사람도 여덟 권을 읽어 한 달에 한 권이 안 된다.

이태 전, 우리나라의 한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에 올랐을 때 미국의 문학평론가는 ‘한국 사람은 독서를 회피하면서도 노벨상을 원한다’고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98%에 달하고 매년 4만여 권의 책이 출간되는 나라지만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한 사람뿐‘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제 여론기관은 ’지구촌 상위 30여 나라 가운데 국민 1인당 주당 평균 독서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정말일까 싶은 자료를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 고장의 독서인구도 예외는 아닌 성 싶다. 택지에 새로 지은 선비도서관은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들과 공부하러 오는 중.고교생들이 이용한다. 어른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문화원 옆의 시립도서관도 주로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드나든다.

지난 6월23일 개최한  ‘안동시 한 책 읽기 운동본부 출범식 및 선정도서 선포식’에 관심이 간다. 시민이 독서를 생활화하고 안동이 지닌 정신문화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한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이런 운동을 우리고장이 시도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선비문화의 발원지는 소수서원의 고장, 영주이다. 영주는 유교문화의 정수이자 선비도시로서 성균관으로부터 공인인증도 받았다.

생업에 바쁠 테지만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한 권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가 ‘도둑질이라도 하라’고 나무랄 정도로 독서에 빠진 허생은 곤란하지만 부모가 틈틈이 책을 읽는 모습은 자녀의 교육에도 바람직하다.

선비는 모름지기 책을 읽는다. 책을 읽어야 선비의 고장, 영주의 시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독서’라고 하면 ‘영주’, ‘영주’하면 ‘책 읽는 시민’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으면 한다. 시민의 왕성한 독서 열기에 타 지역 사람들이 ‘과연 안향선생의 선비 고을답다’고 감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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