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 속의 인생 김매삼 할머니

*영주여고 학생들이 2016년부터 3년째 우리고장 어르신들의 삶을 정리하는 ‘자서전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영주시립양로원 ‘만수촌’, 부석면 남대리, 영주시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해 두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에 본지는 자서전의 내용을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다시 정리해 싣습니다. <편집자 주>
 

1925년 12월 23일, 나는 봉화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지어준 ‘매삼’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 좋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 왔다.

나에게는 6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가난했던 그 시절.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늘 허기졌던 우리 남매들은 어머니께서 칼국수를 준비하실 때면 오종종하니 옆에 붙어 앉곤 했었다. 썰고 남은 꼬랑지를 주실 때만 기다리고 있다가 아궁이 불에 구워 먹던 그 맛은 지금도 가끔 혀끝을 맴돌곤 한다. 온 몸을 땀으로 샤워하면서 함께 고구마를 캐고, 돈을 아끼려고 시내까지 걸어서 심부름을 했다. 아지랑이가 춤추는 길을 걸으면서 벌겋게 달아 오른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곤 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흔쾌히 넓은 어깨를 내밀어주는 소중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차별 받던 어린시절

나한테 이런 형제자매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리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밉기도 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항상 남자 형제에게만 주고 나물 다듬기는 여자들에게만 시키고 남자형제들에게만 잘 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나를 학교에 보내주지 않은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배움의 공간으로 갔을 때 나는 하염없이 베를 짰다. 사람들은 내가 베를 짜는 것이 강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베 짜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별로 존재감이 없어 보였던 가느다란 실이 베틀로 들어가 내 손끝의 리듬을 타고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했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베는 내 어린 시절의 전부이자 외로웠던 나를 달래주고 보듬어준 삶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 전쟁에 잃은 둘째오빠

1950년 6월 25일 6.25 사변이 일어났다. 우리 가족은 어찌어찌 지내다가 시일이 흐른 뒤 피난을 가기 위해 짐을 쌌다. 양쪽 겨드랑이에 짐을 끼고 방문을 나서는데 오빠가 전쟁이 끝났다며 뛰어오셨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둘째 오빠가 전쟁이 끝나 돌아오는 길에 인민군의 총에 맞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인민군들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가족 모두가 분개하며 그 인민군들을 원망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내 삶의 든든한 소나무가 되어줄 서방님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선하고 듬직한 덩치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가다 보니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도 미운 정 고운 정 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와 남편 사이에는 아들 한 명, 딸 두 명이 생겼다. 세 남매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내 손에서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들인데 이제는 내가 세 남매들을 못 떠날 것 같다. 무기력해지며 자식을 의지하게 되는 자신을 보면서 ‘나도 어릴 때 부모님께 더 다정하게 잘해드릴걸’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 교통사고로 잃은 외동아들

부족한 대로 서로 보듬고 살아가던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둘째 오빠의 죽음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는데... 형제를 잃은 것과 자식을 잃은 것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항상 집에서 내 일을 도와주던 아들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들의 빈자리가 점점 더 크게만 느껴졌다.

며칠 전에도 손녀들이 찾아와 아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눈물이 났다. 애써 괜찮은 척 해보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눈물이 뜨겁게 차오르며 아롱아롱 방울진 눈물 속에 아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들의 빈자리를 채우며 정신없이 살던 나는 양로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산에 올라가 고사리도 캐고 산나물을 뜯는 것에 재미가 들어서 요즘은 산에 자주 간다. 그래도 가끔은 옛날 생각이 난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시래기로 찬을 만들어 먹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릴 적에 느낄 수 없었던 북적함이 살아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정리_권규린, 신미영, 정세주(영주여고 1학년)청소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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