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편의 시문(詩文)에 나오는 유서 깊은 샘
후손들 뜻 모아 송석천 복원하고 유래비 세워


문화재들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고 병들기도 하고 죽는다. 그러나 기억하고 보살필 때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기도 하고 ‘복원(復元)’이란 과정을 거쳐 다시 살아난다.

가흥1동 성지미(聖岑) 마을에 있는 심원당(心遠堂) 샘(松石泉)이 후손들의 노력으로 5월 복원공사가 끝나 지난 10일 유래비를 세우고 복원을 기념했다.

심원당 샘은 야성송공 잠(潛,18세,1546生)이 1570년경 마을을 개척할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원당 실기 송세항의 시에 「고木引泉水(고목인천수) 懸流落鏡中(현류락경중)/나무를 쪼개 샘물을 끄니 폭포가 맑은 연못에 떨어지네」라 했고, 난고 류지희(柳熙之)의 심원당 기문에도 「당 왼쪽에 샘이 있어 산 아래에서 물이 솟아 나오네」 라고 했다.

이와 같이 심원당 샘은 10여 편의 시문에 내력이 담겨 있는 유서 깊은 샘이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후손들은 복원하기로 뜻을 모으니, 심원당의 13세 손부(孫婦) 강릉유씨(영희,가흥1동14통장)가 영주시에 요청하여 샘을 복원하고 보호각을 세우게 됐다.

이 샘 유래비문을 쓴 후손(13세) 송무찬 씨는 “샘은 ‘생명의 원천’이라고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가거지(可居地)의 첫 번째 조건을 ‘샘’으로 꼽았다”며 “마을이 생기고, ‘심원당’이란 정자가 있는 것도 이 샘이 있어 가능했다. 복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영주시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마을 송도선(12세) 후손은 “샘의 이름을 ‘송석천’이라 한 것은 샘이 등진 성봉산(聖峰山)에 소나무와 암석이 많아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아오른다 하여 송석천(松石泉)이라 이름했다”고 말했다.

송원일 심원당 주손은 “송석천 유래비 건립을 위하여 숭조애향(崇組愛鄕)의 마음으로 정성을 모아주신 태선, 도선, 승선, 우선, 재선, 진선, 광선, 원선(이상12세), 원기, 무찬, 원식, 원도, 준영, 준상, 창학, 준현, 준형, 준규(이상13세) 족친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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