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 영주 선비음식의 근원을 찾아서

음식문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 문화, 생활, 자연환경 등을 알 수 있다. 요즘은 맛도 좋은 건강음식이 대세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음식들로 건강함을 상징하는 ‘웰빙’이라는 이름을 붙여 음식을 선보인다. 문화자원이 풍부한 영주도 지역만의 음식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이에 본지는 그 노력과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양반 자제들에게 의술 가르치던 곳
건강 위한 치료와 예방의학의 시작


각 지자체는 그 지역에서 전해오는 음식을 개발, 발전시켜 하나의 문화트렌드로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영주도 마찬가지이다.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우리고장은 지역의 역사와 스토리를 접목한 대표음식개발로 2016년부터 영주 향토음식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사찰음식과 선비음식 연구 활동을 이어왔다.

먼저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식자재 목록을 참고해 담박한 선비반상을 개발하고 부석사를 중심으로 대표 사찰음식개발도 병행했다. 이후 대중에게 선보이는 자리도 마련했다. 특별한 한 끼 식사체험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은 발전 가능성을 기대할 만큼의 호응은 부족했다.

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름을 불릴만한 근원이 있듯, 음식에도 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영주에는 예방의학을 근간으로 한 식치음식전문가 양성교육이 시작됐다. 이는 그 옛날 영주의 선비들이 머물던 자리마다 음식문화가 함께 했듯이 음식에서 깃든 선비정신을 찾아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뜻이다. 그 근간(根幹)을 소수서원 유생들의 음식문화에서, 제약구민(製藥救民)과 식의(食醫) 공부를 위주로 예방의학(豫防醫學)을 강습(講習)하던 제민루(濟民樓)에서 찾았다.

▲영주 선비와 음식의 관계성
영주시에서 추진한 선비반상은 선비음식의 뿌리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그 근간을 찾은 곳은 조선 초기인 1418년 전국최초로 건립된 의국인 제민루이다. 의료기관인 제민루는 약재를 가공하여 약을 만들어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백성을 구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이와 더불어 성리학자들에 대한 식의(食醫. 조선 시대, 사선서(司膳署)에 두었던 정구품 벼슬. 궁중의 음식물을 검사하는 일을 맡아봄) 공부로 예방의학을 강습하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공부한 유의(儒醫) 이석간(李碩幹1509~1574)은 그가 기록한 ‘경험방(經驗方)’을 통해 음식을 통한 다스림과 시골에서 나는 약재의 중요성을 열거하고 있다. 선비반상은 식치(食治) 음식과 사상이 만나는 기초를 만든 이석간 경험방을 참고로 만들어졌다.

또 하나, 선비반상은 조선시대 최초 사립대학인 소수서원 유생들의 음식문화에서 찾았다. 소수서원은 건립초기 사액을 받으면서 다양한 식자재와 더불어 물질적으로 풍부한 지원을 받았다. 성리학의 요람답게 전국에서 유생들이 입학하면서 전국 8도의 식자재도 공급받아 경북음식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방의학 강습하던 ‘제민루’
시민들은 ‘삼판서 고택’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곳에 누가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그러나 위에 높게 지어진 ‘제민루’는 명칭으로만 아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본래 제민루는 구성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위치의 자리로 옮겨진 제민루 앞에 안내판에는 태·소백산에서 자생한 진귀한 약재를 저장하고 위로는 태의(太醫)에 공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던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진 곳이라고 쓰여 있다. 오늘날 보건소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선비들이 모여 시가(詩歌)를 읊기도 하고 경로소(敬老所)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은 고려 공민왕 20년인 1371년 하륜(河崙)이 군수로 부임해 학교를 세우고 누각 5칸을 세웠던 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건물이 무너지자 조선 태종 18년인 1418년에 군수 이윤상(李允商)이 다시 의원 3칸을 지었다. 세종 15년인 1433년에 군수 반저(潘渚)가 하륜의 뜻을 이어 옛 터에 동재 6칸, 남루 5칸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비들은 이곳에서 식의(食醫) 공부를 위주로 예방의학(豫防醫學)을 강습 받았다. 주요 활동무대가 영주였던 퇴계 이황도 19세에 영주의 의원(醫院)에 와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의원이 제민루이며 6개월을 머물며 제약 구민하며 공부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역대 군수들은 향인(鄕人)과 협력해 제민루를 보전해왔으나 1961년 대홍수로 붕괴됐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향인들의 건의로 서천 언덕에 이전했다. 또 다시 건물이 노후되자 2007년에는 한 단계 높은 현재 위치에 개축해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영주의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음식과 사상의 만남 기초로
몸이 아프면 치료약과 몸을 더욱 보호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체질에 따라 피해야할 음식이 있고 맞는 음식이 있듯이 몸을 위한 예방의학과 함께 음식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제민루에서 수학한 유의 이석간은 음식으로의 다스림과 사상을 담은 식치처방을 경험방에 담았다. 제민루는 어려운 백성을 보살피고 영주의 선비들이 모여 예방의학을 배우고 알리며 그들의 사상이 전파되던 곳이다. 이같은 제민루에 대한 연구가 지금 한창이다. 선비사상을 근간으로 한 식치음식도 전문가양성에 날개를 달고 있다.

영주향토사연구소 김태환 소장은 “현재 진행 중인 자료조사가 오는 8월 말이면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10월경에는 세미나도 계획하고 있어 역사적 근거자료가 더해지면 예방의학을 통한 식문화도 근간이 확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영주 식치원에서는 음식(飮食)과 식기(食忌)를 중심으로 식치(食治)와 향약(鄕藥)의 중요성을 열거한 이석간 경험방을 기초로 식치음식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병이 난 후 치료 목적의 식자재 활용보다는 병이 나기 전 예방 일상식을 통한 음식 처방을 알리는 것이다.

식치원(원장 신성미)은 조선중기 사대부인 실존인물이 저술한 책에서 그 시대 선비들의 식생활을 알아가고 모호한 선비사상을 영주 음식의 사상적 근원인 식치(食治)에서 찾아가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은아/윤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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