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느티나무 할아범

-박동진

 

동네 고샅, 늙은 느티나무 베어지던 날
이장 선거에 떨어진 영감 골이 났다
“늙어 힘없으면 발 품 파는 심부름도 못한다디야,
이런 우라질 세상“

서른아홉에 상처한 영감 
죽은 갓난아이, 기차에 뛰어 든 젊은 놈
돌림병에 죽은 벙어리, 저승길 편히 가도록
동네 궂은 일 마다 않던 영감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죽기 전에 이장 한번 하겠다는데
귀농한 젊은이가 이장이 되었다

젊은 이장, 교통에 방해된다며
고샅길 수백 년 먹은 느티나무를단숨에 전기톱으로 베어냈다.
몸통에 구멍 뚫린 느티나무 할아범
수백 년 묵은 뿌리가 잘려나갔다

낮술에 벌게진 영감
구멍가게에서 막걸리 서너 병 안주 없이 마시고
“나무 그늘에 땀 식히지 않은 놈 있었느냐” 호령이시다
오일장 보고 돌아올 때 다리쉼 할
느티나무 그늘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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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의 아픔을 겪은 친구는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동네를 드나들 때마다 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 나무에게 가서 하소연을 한다고 한다. 이사를 오면서 서 있던 아파트 화단의 목련나무를 좋아했다. 응달쪽으로 서 있던 목련나무는 천개의 등불을 켜들고 남들보다 조금 늦은 봄에 찾아왔다. 꽃이 지고도 나무는 연초록 천 개 손바닥마다 햇살을 받아 들고 바람이 불 때면 손을 흔들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봄앓이 시린 가슴을 창가로 가서 진정시키곤 하였다. 올 봄 누군가 목련나무를 댕강 베어버렸다. 키가 너무 커서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에서라고 했다. 낡은 아파트를 이사 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목련나무 때문이었다. 창에서 목련나무가 사라졌다. 마치 소중한 친구 하나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올 봄 전체가 휘청거렸다. 못내 서운하고 섭섭하다.

“그 나무 꽃 안쳐다본 놈 있었느냐” 호령이라도 하시게 구멍가게 가서 막걸리 서너 병 안고 오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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