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산에 오른다는 것은 반드시 건강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몇 주 전 몇몇 사람들과 옥순봉 산행을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산행을 한 것은 오래 전에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일행 가운데 김육훈 선생이 있었다. 이 지역 출신으로 지난 국정교과서 소동 때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네트워크’에서 원로 역사학자들과 활동한 소장역사학자다. 그와 산행을 하면서 새삼 국정교과서 소동이 떠올랐다.

정권이 바뀌면서 자연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아서인지, 우리는 그 소동을 잊고 있었다. 그때는 너무나 어이없고 참담했다. 모든 역사학자와 역사교사 그리고 시민 대부분이 국정화를 반대했다. 그때 교육부 장관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의 99.9%가 잘못된 역사 교과서라 했다. 그 올바르다는 0.1%가 어느 학교도 채택하지 않은 교학사 교과서였다. 박근혜 정권은 학생들에게 어느 학교도 채택하지 않으려는 교과서를 강제로 가르치려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시민을 개, 돼지로 알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영혼이 비정상적이 된다는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다. 역사에 올바른 역사는 있는 것인가? 사람마다 다른 역사를 겪고 학자마다 다른 사관을 가질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끊임없는 연구 활동을 통하여 가장 객관적인 역사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 해석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올바른 역사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존재하게 된다. 북한을 제외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검인정 교과서를 쓰는 까닭이다.

그들이 국정교과서에 담고 싶었던 내용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친일과 군사독재에 대한 미화다. 대부분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이 국정화에 반대한 것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침탈에 저항한 독립투사들의 목숨을 건 항거는 역사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이회영, 이상용,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김구, 윤봉길, 안중근 등 셀 수 없이 많은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우리역사가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 사유화되는 일이다. 비록 정권이 바뀌어 무산되긴 했지만, 우리고장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가르치겠다고 신청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없었던, 더구나 선비의 고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청하면 학교에 특혜를 주겠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씁쓸한 기억이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좋지 않는 기억은 잊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두고두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요,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길이다. 김 선생을 만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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