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호(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세상 살면서 가장 볼만한 게 싸움구경이고 불구경이랬다. 물론 나하고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는 전제가 붙긴 한다.

요즘 세상에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쌔고쌨다. 눈만 뜨면 싸움이다. 말싸움은 매일이고 아예 텔레비전에서는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싸움판을 벌인다. 종편이라고 하는 채널에서도 내로라하는 이들을 출연시켜 말싸움을 시킨다.

신기하게도 승패가 갈리지 않는 싸움에 구경꾼이 몰리고 한 입 거들고 산다. 부끄러운 대통령탄핵정국에서 시민총궐기대회라고 하는 큰 싸움판이 벌어졌었다.

전국에 아니 전 세계에 생중계된 시민단체와 국가권력이 맞부딪힌 살벌한 싸움이었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서로가 사전에 예고한대로 부딪혔고 폭력이 난무했으며 결국 한 사람이 사경에까지 이르렀다. 예상한대로 정치권은 서로 네 탓이고, 만만한 청와대로 화살을 돌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지루한 말싸움이 다시 불붙었다. 정말로 우리는 싸움을 즐기는 폭력적인 민족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지만 볼 게 많지 않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장미대선을 거쳐 새 정권이 들어섰다.

적폐청산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과업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로 흘러 곳곳에서 불꽃을 튀기는 공방이 이어졌다. 수감된 이는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재판에 불참하는가하면 뒤이어 법정에 선 전전 대통령도 이런 저런 핑계로 재판에 나갈 수 없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의 연속이다. 2018 동계올림픽 남북공동 여자 아이스하키팀 구성으로 한반도의 봄을 맞는가 싶더니, 4.27 판문점선언이라는 경이로운 사태가 일어났고, 사상최초의 북미간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6.13 지방선거가 출발했으니 그야말로 동시다발 전쟁터가 따로 없다. 문제는 나와 관계없는 싸움이 아니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 평화냐, 전쟁상태의 연속이냐의 문제만도 아니다. 여야 간의 정권다툼 문제는 투표로 판가름이 날 테지만, 국가 간의 외교나 침체된 경제문제와 일자리 문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와중에 스포츠 경기가 벌어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고 순간순간 승패가 달라지기 때문에 보는 이는 손에 땀을 쥔다. 스포츠에도 내노라하는 선수가 있지만, 모든 경기를 뛰지 않는다. 쉴 때도 있고 다치기도 하며 더러는 전혀 의외의 새 얼굴이 나타나 흥미를 돋운다.

새 얼굴은 분위기를 바꾸고, 결국 새로운 응원이 나타나고, 새로운 구호가 등장한다. 심드렁해질 때는 새로운 규칙이 생기고 경기방법도 바꾸어가며 경기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촉구한다. 이래서 아마도 고대로부터 시작된 올림픽이 현재까지도 살아남은 것인지 모른다. 실력이 바탕이 된 2018 월드컵도 코앞이다. 예정된 시간표대로 6.12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6.13 지방선거가 끝나면 이어서 러시아 월드컵이다. 누가 이기든 지든 간에 지구촌이 술렁댈 것이다. 누구는 꿈을 꿀 것이고, 누구는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선비의 고장, 영주’에도 후보자 34명이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11만 시민 중 유권자들의 투표로 배지를 달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그저 청렴하고 겸손하며 능력 있는 이들이었으면 좋겠다. 학연이나 지연 혈연 같은 단순한 관계로서가 아닌 공약이나 의지 같은 공공의 이익이 판단의 근거가 되기를 소망한다. 투표는 민주주의 국가 시민의 자유이며 권리이다. 나의 자유고 너의 자유이며 우리 모두의 자유인 것인데, 그 실행방법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 법률에 의해서 보장받는 자유가 법률을 어겨가면서 시행된다면 이루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자유에는 가시가 없어야 한다. 스치더라도 부딪히더라도 불꽃은 튀지 말아야 한다. 그 불꽃이 화재로 번져서도 안 된다. 격렬한 경기에서 피가 튀게 싸우더라도 승자와 패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축하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지 않는가. 싸움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고 도전과 방어는 서로의 자유이고 권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서로 등 두드리는 푸근한 광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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