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막으로 웃음 짓는 삶[3] 한시작법지도 나종태 강사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체 82.4년을 산다. 남자는 79.0년, 여자 85.5년이다. 1970년부터 매년 평균수명은 5.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점점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소중한 인연이 만든 삶의 안정과 여유
한시작법 널리 알리고 명맥도 이어가

글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 

예부터 선조들은 절제미를 보여주는 ‘한시(漢詩)’에 일상의 삶과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기록했다. 

한자가 어려워 배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한시에 담긴 뜻풀이를 보며 감탄사를 내비치기도 한다.

이 한시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영주시노인복지관에서 한시작법을 지도하고 있는 나종태(78) 강사를 만나기 위해 소남한시회 정기모임이 있는 날, 영주문화원 1층 강의실로 살며시 들어갔다.

“남한산성보다는 다른 것이 좋겠어요”

조금은 어두운 강의실 앞에 한시가 적혀있는 슬라이드가 한 장씩 넘어가면 회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소남한시회 회장인 나 강사는 이날 2시부터 회원들과 안동 도산별시, 영양 한시백일장, 서울 광화문광장 한시경연대회에 나갈 시제와 관련해 내용을 보며 의견을 나눴다. 오후 4시 모임이 마무리된 후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철도전성기 영주에서
봉화가 고향인 그는 1967년 영주에 정착했다. 35년을 철도공무원으로 일하고 1998년 퇴직했다. 지금도 생생한 첫 직장의 근무지는 안동 객화차사무소로 군대를 가기 전까지 근무했다. 제대 후에는 장수면 반구역으로 복직해 3년 6개월을 근무하고 태백선 증산역에서 1년을 머물다 영주역과 북영주, 구 단양 등으로 이동했다.

“1983년경 만해도 제천의 봉양역까지 영주 관할로 영주지방철도청 산하에 소속돼 있었어요. 당시 전국 5개 지청에 약 4만 명이 근무했는데 영주지청 산하에는 약 6천명이 근무했었죠. 그때 영주역에는 수하물, 구내, 수송, 서무, 전신, 등기 등에서 150명 정도가 있었어요”

역무반 소속으로 26명 정도와 함께 근무했던 그는 지금의 영주역에 가면 감회가 남다르다. 하루 13명이 하던 인원이 이젠 4~5명이 할 정도로 적어졌기 때문이다.

퇴임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어느 해보다도 가장 많은 인원이 퇴직해 단체사진을 모두 찍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철도는 58세에 퇴직하는데 38년, 39년생의 근무연장으로 40년생과 정년퇴임이 맞물려 함께 퇴직하게 됐지요. 대부분 단촐하게 퇴임식이 진행되는데 인원이 많다보니 계단에 올라서도 다 못섰을 정도였지요”

▲새로운 시작과 인연
모두가 퇴직을 앞두고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도 그랬다. 그가 선택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1993년 겨울, 퇴직을 5년 앞두고 그는 큰 도전을 했다. 바로 연금전액을 정비공장을 차리는데 쏟은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에 모험과도 같았지만 다행히도 그에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어머니가 절에 다니셨어요. 다니던 절의 스님이 어린 나를 두고 어머니께 쇠와 관련된 일을 하라고 말했데요. 지금 생각하면 철도에 근무한 것도 비슷한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한 것이 제 인생에 큰 복이 된 것 같아요”

자동차정비에 대해 전혀 모르던 그가 차린 ‘대명자동차정비공장’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는 먼저 정비공장 허가를 받고 정비전문가를 찾았다. 주변에 자문도 구했다. 그리고 먼저 영주에서 정비를 잘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봤다. 사람들은 ‘정휘근’이란 사람을 추천했다.

한 정비소에서 직원으로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직접 찾아가 동업을 제의했고 정씨도 마침 사업을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말했단다. 수익금을 50:50으로 나누자는 의견에도 동의했다.

이날의 약속은 사무직을 해오던 그와 기술직을 해온 정씨에게는 동반성장하는 기회가 됐다. 1993년 맺은 신뢰는 2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든 정비 업무는 정씨가 전권을, 행정업무는 나 강사가 전권을 맡아 오고 있다.

대명자동차정비공장은 나 강사가 대표이사로, 정씨가 총괄이사로 그리고 오래동안 근무해 온 3명의 직원도 이사로 등록돼 있다.

그는 “동업은 쉽지 않은 것이지만 젊은 청춘이 노년이 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시를 배우고 알리다
“수요일은 바로 한시작법을 하는 날이에요. 한시작법 강사님은 소남한시회 나종태 강사님입니다. 지역주민에게 한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재능 기부를 하시는데 사람들은 한시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인식해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한시를 알고 배우고 사랑하는 분들이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영주시노인복지관에 가면 나 강사가 전하는 한시가 들린다. 복지관에서는 나 강사의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려 회원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한시를 배우며 흥미를 느끼게 됐다는 평도 함께 실었다.

한시를 알리며 그 매력에 빠져 있는 나 강사에게 한시를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아내는 3남5녀 중 막내딸이에요. 그러다 보니 맏동서가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았지요. 그 동서가 한시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와서 주무실 때마다 시제가 무엇이고 장원을 했던 이야기를 항상 하셨죠”

자주 접하다 보니 관심도 생겨 2003년부터 시작한 한시가 15년째다. 2005년에는 소남한시회에 가입하고 2016년부터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1954년 설립된 소남한시회에는 한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며 “회원들의 실력이 남달라 전국단위 한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휩쓸었고 영주에서 왔다고 하면 그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평소 회원들이 써온 한시를 함께 보면서 교정하고 개인별로 작성해오면 서로 살펴본단다. 그가 영주시노인복지관에 무료로 재능봉사를 하고 있는 이유는 한시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전국 시단에 가면 80~90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어요. 그나마도 점점 줄어들어 명맥이 끊길 위기죠. 그래서 한시작법을 지도해 후배를 양성하고 회원으로 가입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회장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이어가기 위한 나름의 노력입니다”

그는 회장으로 회원을 증가시키고 선비의 고장인 영주를 전국에 알리며 내실을 다져 후임회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다.

“개인적인 소망은 접었어요. 3남매도 잘 지내고 나이가 들어가니 욕심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다만 영주에 헌신하고 싶은 마음은 큽니다”

그의 수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쁘게 사는 날이다. 취미로 화, 목요일 시민회관에서 아코디언을 배우며 여가를 즐기는 일을 제외하면 그는 항상 한시와 가까이 하고 있다.

김은아/윤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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