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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프리즘[87]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권서각(시인·문학박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05.09 18:18
  • 호수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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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다. 5월을 가리키는 말은 여럿이다.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고 신록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오월에는 소만(小滿)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소만(小滿)은 이십사절기의 하나로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며,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천지에 가득 찬다고 한다. 눈을 들어 어디를 둘러보아도 시리도록 푸른 신록이다. 어떤 시인은 눈이 시리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다.

우리고장에도 가로수가 잘 심어져 있다. 벚꽃이 지고 잎이 푸름을 더했다. 이팝나무에는 쌀밥 같은 하얀 꽃이 한창이다. 우리 꽃 이름에는 슬픔이 묻어 있다. 산은 많은데 들은 적어서 우리는 늘 배가 고팠다. 나뭇가지에 하얗게 핀 꽃이 마치 이밥처럼 보였으리라. 그래서 이팝나무가 되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꽃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까. 쌀밥을 아직도 이밥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이씨 왕조가 들어서서 처음으로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쌀밥을 이밥이라 불렀다 한다. 이팝꽃 조팝꽃 슬프도록 하얀 꽃이다.

누가 사는지 모르는 어떤 집의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붉게 피어서 지나는 사람을 보고 웃고 있다. 장미,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꽃은 더할 나위 없이 이름답지만 치명적인 가시를 숨기고 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비록 죽음에 이를지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할 만큼 아름다운 꽃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장미를 사랑해서 결국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한다.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수로부인이었다. 수로부인은 강릉 태수 순정공의 부인이다. 경주에서 강릉으로 부임해 가는 길에 가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난다. 역사는 미인이 있는 곳에 전쟁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클레오파트라가 그러했고 양귀비가 그러했다. 순정공 일행이 동해안을 따라 강릉 가는 길에 잠깐 쉴 때였다. 수로부인의 눈에 벼랑에 핀 진달래꽃이 들어왔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열어 흰 이를 드러내며 꽃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도 벼랑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할 때 소를 몰고 가던 어떤 노인이 이 광경을 보았다. 노인은 고삐를 놓고 벼랑에 올라가 꽃을 꺾어서 노래를 부르며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노인으로 하여금 벼랑에 오르게 했다. 사랑의 힘이다. 수로부인, 그녀도 오월의 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으리라. 오월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소녀에서 성숙한 여자의 중간 어디쯤이리라. 잎에 비유한다면 신록이요 꽃에 비유한다면 장미꽃이리라. 비록 이루어질 수 없을지라도, 혹은 치명적인 가시에 찔려 죽을지라도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싶은 계절이다. 오월이시어, 계절의 여왕이시어, 소 몰고 가다가 고삐를 놓고 무릎 꿇고 고백하노니, 부디 미투(Me too)라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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