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97] 안정면 신전3리 ‘향산’

예전에 ‘이밥곳’ 찾아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
화향정(花香井) 감로수로 빚은 만수주(萬壽酒)

 

향산마을 전경

안정면 향산마을 가는 길
신전3리 향산(香山) 마을은 면의 서쪽 용암산 방향에 있다. 안정면사무소에서 용암산·봉암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500m 가량 가다보면 도로좌측에 수백년 수령 버드나무가 나타난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상하로 보이는 집들이 향산마을이다. 지난 22일 향산마을에 갔다. 이날 안광환 이장의 주선으로 이두근 노인회장, 김봉기 노인회부회장, 조정숙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향산(香山)
조선 중기(1700년)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이 지역은 풍기군(풍基郡) 생고개면(生古介面) 신전리(新田里)가 됐다. 그 후 조선말 1896년(고종33) 행정구역 개편 때 생고개면(生古介面)이 생현면(生峴面)으로 바뀌면서 생현면 신전리가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풍기군의 생현면, 동촌면, 용산면을 안정면(安定面)으로 통합했다.

면(面)의 이름이 ‘안정면’이 된 것은 풍기의 별칭이 안정(安定)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곳 선비들이 상의하여 ‘안정’으로 정했다. 이 때 향산동(香山洞)은 영주군 안정면 신전동(新田洞)에 편입됐다. 당시 살포정을 신전1동, 새끼실을 신전2동, 향산동은 신전3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광환 이장은 “신전3동 향산마을은 도로를 기준으로 남쪽을 음지마, 북쪽을 양지마라 한다”며 “음지마에 28호, 양지마에 35호, 매갑에 5호가 살고 있다. 지금 매갑은 닭발집, 매운탕집, 오리집 등 식당촌이 들어섰고, 전원주택이 여럿집 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살기좋은 농촌을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옛 화향정

지명유래
향산(香山)이란 지명이 행정구역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다. 이에 향산은 조선 후기쯤 형성된 마을로 추정된다.

1994년에 발간된 안정면지에 보면 “향산(香山) 마을은 1750년경 진성이씨 일족이 개척했다. 향산이란 화향정(花香井)이라는 샘에서 유래하여 향산이라 했다」고 적었다. 그래서 화향정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찾아봤다. 이 마을 배진섭(79) 어르신과 박기동(69) 씨의 안내로 화향정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을안쪽으로 들어가 과수원을 지나고 가시밭길을 넘어 두릅나무가시를 타넘고 조금 더 올라가니 산자락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화향정(花香井)을 만날 수 있었다.

박기동 씨

배진섭 어르신은 “마을에서는 이 샘을 ‘하양샘(화향샘)’이라 부른다”며 “예전에는 물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주변 수로사업, 지하수개발 등으로 양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또 “향산(香山)의 유래는 또 있다”면서 “예전에 마을 앞 도랑가에 향나무가 많아 향산이라 했다는 구전도 있다”고 말했다. 박기동 씨는 “예전에는 이 물맛이 넘넘 좋아 이 물을 길어다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향산의 지명유래가 된 화향정은 예전에는 ‘청량(淸凉)한 감로수(甘露水)가 솟아오르는 이름난 우물(井)이었다고 지명유래편에 나온다.

향산마을과 산모롱이 하나를 경계로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 매갑(梅甲)이다. 예전에 마을앞산 밑 못(池)가에 매화나무가 있었는데 매화꽃이 못에 떨어진 모습을 보고 매화낙지(梅花落池)라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경치가 고을에서 으뜸이라 하여 매갑(梅甲,갑은 1등을 뜻함)이라 불렀다 한다.

 

모송정

 

매갑 느티나무

모송정(慕松亭)과 향산정(香山亭)
박기동 씨를 따라 음지마 모송정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박 씨가 원미용실을 가리키며 “저 미용실은 시골에 있지만 사람들이 북적인다”고 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도랑을 건너 모송정 앞에 섰다. 벽에 걸린 기문을 보니 「고려말 문인 만송당(晩松堂) 방순(方恂)을 추모하여 후손 방상운(方相運)이 건립한 정자다. 방순(溫陽方氏)은 고려 공민왕 11년(1362년) 문과에 급제하고 좌랑(佐郞),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참의(參議), 관찰사(觀察使) 등을 역임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이성계가 예조참의에 임명하였으나 경기도 광주(廣州)의 숯골에 은둔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향산정은 마을 회관 뒤 창고 옆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배진섭 어르신에 의하면 “일제 때 인근부락 선비 30여명이 나라 잃은 서러움을 한탄하다 매갑 느티나무숲 반석에 모여 ‘향산계’를 조직했다”면서 “선대들은 일제에 항거하면서 신교육 도입, 농촌계몽운동 등을 전개했다. 해방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후손들이 1960년대에 향산정을 건립했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후손들은 계(契)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만수주조(滿洙酒造)

화향정(花香井)과 만수주(萬壽酒)
신전3리 경로당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만수주조’라고 새겨진 바위돌이 보이고, 그 안쪽에 영주를 대표하는 막걸리 ‘영주생탁’ 양조장이 있다.

만수는 일만 만(萬)자에 목숨 수(壽)자를 쓰는데 만수주조는 만수(滿洙,창업자의호)로 쓴다고 한다. 예전에 이런 시가 있다.

「만수산(萬壽山) 만수동(萬壽洞)에 만수천(萬壽泉)이 있더이다/이 물로 술을 빚어 만수주(萬壽酒)라 하였느니/이 술을 드시옵고 만수무강(萬壽無疆)하옵소서」라는 시다. 조선 중렵(1604) 예조참의 이거(李거,1532-1608)가 노모 100세 잔칫날 지은 시다. 향산마을에도 만수천(萬壽泉)이 있다. 바로 화향정(花香井)이다. 향산 어르신들은 모두 건강하다. 물이 좋아서다. 화향정 감로수로 빚은 ‘영주생탁’을 드셔서 더 건강하신 것 같다. 만수주조는 양조뿐만 아니라 체험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여유를 즐기는 현대인들에게 딱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 구경 한 번 가시면 좋을 듯하다.[만수주조 010-9591-5641]

 

향산꽃집

‘이밥곳’을 아시나요?
지금은 아니고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이밥이 최고였다. 이밥에 고깃국이 소원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다. 이밥은 ‘이(李)씨의 밥’이란 의미로 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비로소 이씨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이 마을 우필호(83) 할머니는 “원래 (안동)녹전면 원천리에 살았는데 시부께서 논 5마지기 팔아 ‘이밥곳’으로 이사 오게 됐다”며 “향산은 쌀의 고장이요 이밥의 마을로 지역에서 제일 살기좋은 마을로 소문났다”고 말했다. 김태수(76) 노인회부회장은 “지금도 향산은 잡곡은 거의 없고 쌀이 많은 마을”이라며 “사과, 인삼 농사가 조금 있긴 하지만 대부분 벼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말했다.

 

저녁도 함께
향산마을 사람들

 

안광환 이장

 

이두근 노인회장
조정순 부녀회장
전순풍 할머니
김봉기 노인회부회장

 

이병진 어르신
우필호 할머니
배진섭 어르신
김태수 노인회부회장
이기훈 씨

향산마을 사람들
마을 앞 버드나무 삼거리에서 음지마로 들어서면 바로 안심3리 경로당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목에서 이병진(83)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회관 문을 열어주면서 “2시 반쯤 되면 많이 모인다”고 했다.

김영자 할머니와 손녀 예슬이

잠시 후 이두근 노인회장을 비롯하여 박기동·배진섭·이기훈 씨 등이 사랑방에 모였고, 안방에는 김봉기(83) 노인회부회장, 김영자 할머니와 손녀 예슬이가 오고 곧 이어 전순풍·조정순 할머니가 오니 안방이 그득하다. 이두근(77) 회장은 “우리노인정이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은 남녀가 공히 회관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주로 오후에 모여 친교 활동을 하면서 놀다가 저녁을 같이 먹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조정숙(70) 부녀회장은 “향산은 예로부터 예(禮)를 중시하는 선비의 마을”이라며 “서로서로 양보하고 남을 생각하기 때문에 축사 같은 게 없어 깨끗하고, 꽃피는 골목길에는 향기가 가득한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깨끗한 마을’이다. 골목마다 꽃을 가꾸어 꽃동네다.

박순남 씨

회관 뒤 박순남(67) 씨 집은 꽃대궐이다. 박 씨는 “취미로 시작한 크고 작은 화분이 500여개나 된다”고 말했다. 만수주조로 들어가는 길에도 봄꽃이 활짝피었다.

조정순(74) 씨는 “만수주조는 2010년 남편(滿洙公)이 창업했다”면서 “지금은 딸이 이어받아 경상북도 대표 막걸리로 만들었고, 발효체험학교 ‘띄움’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50년 전 울진에서 살기좋은 곳을 찾아 향산으로 왔다는 전순풍(87) 할머니는 “이두근 회장님과 김봉기 부회장님이 노인회를 잘 이끌어 주시고, 봉사를 많이 해서 늘 회관이 북적이고 화목하다”고 말했다. 하양샘을 둘러보고 모송정에 갔다 오니 오후 6시에 가깝다. 사랑방과 주방에 저녁상이 차려졌다. 기자도 20여명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토종 미나리 생저리에 돌나물 두릅무침 비빔밥 지금도 군침이 돈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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