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두 아이가 다투었다. 선생님이 둘을 불러서 왜 다투었느냐고 물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철수가 영희의 학용품을 빼앗고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때렸다. 이런 일이 매일 되풀이 되었다. 참다못한 영희가 “야, 나쁜 새끼야!”라고 소리쳤다.

선생님은 철수에게 앞으로 영희를 괴롭히지 말라고 나무라고 영희에게도 “고운 말을 써야 한다며 타일렀다. 둘 다 잘못했으니 서로 사과하라고 했다. 둘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兩非論)이다. 영희는 선생님이 야속하고 매우 억울했다.

1975년 4월 8일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시민이 사형선고를 받고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간첩조작 사건이다. 죄 없는 사람 8명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다. 이날을 세계 언론은 ‘사법 암흑의 날’이라고 불렀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심 결과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에 의한 간첩조작사건으로 규정하고 8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에게 어떤 기자가 “인혁당 사건 유가족에게 사과할 마음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는 “그것은 두 가지 판결이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두 가지 판결이란 1975년의 사형 판결과 2007년의 무죄 판결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의 판결이 있으니 어느 판결이 옳은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둘 다 완전한 판결이 아니라는 양비론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양비론으로 잘못을 덮으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현대사는 전직 대통령 4명이 감옥에 가는 일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문민정부에서는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려다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게 했다. 지금도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자주 만나는 친구가 빙글빙글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는 정권만 바뀌면 대통령이 감옥에 가 는지? 담에는 문재인이 가면 되지 머.” 어느 정권이나 정권만 잡으면 정치보복을 한다는 말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같다는 것이다. 둘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이다. 그럴듯하지만 친구의 말은 틀렸다. 양비론은 논리가 아니다. 1의 잘못이 있는 쪽과 9의 잘못이 있는 쪽이 같다는 말이니 논리라고 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