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이덕화-주부독서회

나는 벌써

이재무

삼십 대 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오십 대가 되면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

사십 대가 되었을 때 나는 기획을 수정하였다.

육십 대가 되면 일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애오라지 먹고 노는 삶에 충실하겠다.

올해 예순이 되었다.

칠십까지 일하고 여생은 꽃이나 뒤적이고 나뭇가지나 희롱하는 바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벌써 죽었거나 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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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멋진 미래를 꿈꾸며 직업에 충실히 임한다.
하지만 그 멋진 미래에 당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생은 마당놀이보다 길이가 긴 기획이다. 마당놀이는 즐거움을 준다.
수정을 거듭하다보면 100% 만족은 아니더라도 자타가 즐기는 놀이가 된다.

다소 불만이 있는 일도 자꾸 수정하여 성찰을 쌓다보면 즐거운 놀이터가 될 성 싶다.
마흔 후반의 나는 벌써 기획한 길과 많이 엇나갔다.
그러나 꽃과 나무를 즐기는 놀이를 지금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수포로 돌아간 시간을 죽거나 망해버렸다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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