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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해도 봉사했던 삶은 그대로부석적십자봉사회 박화숙 회장
  • 김은아 기자
  • 승인 2018.04.11 15:46
  • 호수 663
  • 댓글 0

지역농산물 대도시 연계 판매 도와
홀몸어르신 목욕, 반찬봉사 지속

“습관이 무서운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다가가게 되더라고요. 작은 손길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감사한 일이죠”

지난달 30일 부석적십자봉사회 박화숙(54) 회장을 만났다. 그녀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부석면 소천리로 귀촌했다. 처음에는 서울을 오가며 영주, 경주, 제천에서 베어링과 관련한 사업을 하는 남편(김봉경.57.웅진 대표) 곁에 머물기 위해 부석의 펜션에 세를 얻어 2년 정도 살았다. 만만찮은 월세에 2013년부터는 집을 구입해 정착한지가 6년째이다.

대부분의 귀촌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지역주민과의 어울림은 그녀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무 살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이어온 봉사활동이 지역사람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큰 장점이 됐기 때문이다.

▲전도활동이 봉사활동으로
“30대 초반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 같네요. 어느 날 작은 시골교회를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없고 대부분 어르신들이었어요. 그래서 목사님께 매달 둘째 주 화요일에 온천을 모시고 가서 목욕봉사를 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제안했지요”

처음에 7명 어르신이 왔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딸이나 손녀 같은 사람이 목욕도 시켜주고 식사도 대접하니 인원은 점점 늘어났다. 덕분에 교회성도도 30명에서 150명이 됐다. 박 회장을 포함한 3명은 지금까지도 물질적인 것부터 모든 것을 함께 봉사하고 있다.
그녀는 “죽을 때 싸가는 것도 아닌데 나눠야 좋은 것 아니겠어요”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목욕, 음식, 재능봉사를 해왔던 일들은 영주에 정착해서도 이어졌다.

▲영주에서 이어진 봉사정신
부석의 사과 맛에 반한 그녀는 지인들에게 사과를 선물하고 귀촌 후에는 지인들의 심부름으로 지역민들의 사과를 연계해 판로를 도왔다. 처음 400짝을 주문받았다가 그 맛이 알려져 다음해는 그 수량이 세배로 증가했다. 지난해는 3천 짝을 주문받았지만 설 명절 전에 다 팔게 되면서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단다.

이외에도 그녀는 집 인근에 있는 목욕탕을 가서 홀로 오시는 어르신들의 등을 밀어드린다. 그동안 봉사해왔던 습관이라 어쩔 수 없단다. 고맙다며 좋아하는 어르신들과 자주 만나고 친분도 쌓이다 보니 마음의 문도 열리고 식사걱정에 반찬을 전달하기도 했다. 때론 찾아가서 청소며 반찬을 놓고 오고 지역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정보로 홀로사시는 어른들을 위해 반찬을 넉넉히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가끔은 죽도 한 솥 끓여 곳곳에 나눈다.

“내가 먹는 반찬을 조금 더 해서 나눠드리는 것뿐이에요. 어르신들은 혼자 계시다 보면 반찬도 부실하고 대충 드시거나 거르실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다보면 건강도 나빠질 수 있으니 걱정이 돼 찾아가게 됐죠. 무척 반기셨어요”

박 회장은 올해부터 부석적십자봉사회 회장을 맡아 카스테라 빵도 구워 경로당에 전달하고 깨끗한 거리를 위한 환경정화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적십자봉사회도 몇 년 전 부석면지역 적십자봉사회원을 모집광고에 먼저 찾아가 등록했단다. 최근에는 20년 가까이 해온 캄보디아 해외봉사활동을 지역민에게 권유해 함께 봉사활동을 간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민요를 배우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해왔던 해외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전하고 우리 민요를 선보이자고 제안했죠. 올해는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행사로 3천명이 모이는 곳에서 12명의 회원들이 재능기부로 무대에 올라가요. 이 때문에 두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죠. 모두 본인 경비를 들여 봉사를 가는데도 선뜻 함께 한다고 해서 너무 감사했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다
그녀는 크게 아팠다. 천식 등으로 오래 아파왔다. 지난해 4월에는 호흡이 멎어 병원에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 큰 병원으로 갔지만 뇌사상태인 것 같다며 산소호흡기만 의존해 며칠을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기적처럼 살아났다.

“지금은 아들(김지우)이 프로골프선수지만 어릴 때는 빙상을 했어요. 그래서 항상 빙상장에 오래 머물다보니 감기를 달고 살았죠. 천식이 있어 밤에 기침을 많이 할 때면 숨이 멎는 경우도 생겨 119를 부른 적도 있어요. 약 부작용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겨 2년 동안 많이 아파 봉사활동은 못가고 돈만 보낸 적도 있는데 마음이 아팠죠”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난 그녀는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단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부모이고 싶다. 그래서 더욱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나의 행동이 자녀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말과 행동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고 작더라도 나누며 살려고 해요. 조금이라도 이웃에 도움이 되면 받는 사람도 좋고 나도 보람되고 좋잖아요”

그녀는 지금처럼 청송교도소도 방문하고 해외봉사에 지역봉사까지 열심히 활동하면서 영주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길 희망했다. 올해는 부석사 인근 3천 평 정도 사과농장을 맡아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이 사과농장은 지역 어르신이 도지를 줬던 것으로 안타까운 사정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돼 박 회장이 이를 맡았다.

박 회장은 “농사가 잘 되면 지역에 더 좋은 일도 하고 소망 중 하나인 캄보디아에 학교는 짓고 싶다”며 “돈을 벌어야 가능한데 될까요?”하고 웃어보였다. 

김은아 기자  haed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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