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군것질거리로 학생들 오가고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생필품 사가는 곳

“계십니까?”하며 소리를 내고 작은 문을 열자마자 한 젊은 아주머니가 나온다. 가게 손님인줄 착각하고 다시 들여다보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가게 주인이세요?”라고 물으니 “네”하고 답한다.

지난 6일 오전 10시 30분경 학교 정문 옆에는 학생들의 교통안전을 담당하는 할아버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쁘다는 가게 주인 전상선(53)씨의 이야기에 다시 약속을 잡고 문을 나오자 문수초등학교 안전지킴이인 장춘학(65) 씨가 반갑게 인사했다. 가게 주인과 친분이 있는 장씨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퇴직하고 쉬기 위해 영주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이라도 지역에 봉사도 하고 적은 돈이라도 벌기 위해 6년 전 학교안전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단다. 가게주인과 그가 길가에서 잠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전상선 씨

▲문수에서 만난 시골점빵
지난 9일 다시 방문했다. “사장님”하고 부르니 “아휴 이런 조그만 가게에 무슨...”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전씨는 26세 결혼해 시내전화국 뒤에 8년을 살았다. 큰 아이가 남산초병설유치원을 졸업할 때쯤 시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문수면으로 들어왔다.

“시부모님이 문수초 근처 마을에 사셨어요. 남편의 직장도 문수여서 부모님 간호를 위해 시골로 들어오게 됐어요. 부모님 한분이 돌아가시니 어른을 놔두고 나갈 수 없어 집에 있던 짐을 하나씩 옮기며 살다 보니 나중에는 집도 팔고 그대로 정착하게 됐지요”

30대 중반에 들어와 살 때 쯤 막내아들이 돌이 되자,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른 일을 생각해야 했다. 남편이 직장에 다녀 금전적으로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시어른들의 남는 땅이 있어 농사라도 지어야할 것 같았단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한 것은 가게였다.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지금 학교 앞 경로당 자리에 있는 가게를 얻었어요. 많이 낡았었죠. 그때 만해도 물건만 잘 갖추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건물과 땅이 다르다보니 나중에는 경로당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어요.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오래된 나지막한 가게건물에 최신 물건들로 가득 채워놓게 되면서 사람들이 몰렸다. 장사도 번창했다. 시내 큰 마트처럼 갖추니 겉모습만 보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많이 놀라기도 했다고.

전씨가 시집올 때나 지금이나 문수는 변함이 없단다. 가게만 조금 더 있었을 뿐. 작은 슈퍼는 그녀가 가게를 시작할 때쯤 만해도 5개 정도 있었다. 시집오기 전 자장면 집이 있었고 문수역 앞에는 식당도 하나있었지만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아이들, 학교와의 인연
학교 앞 가게라 학생들과의 인연도 깊지만 학교와의 인연도 남다르다. 30대 중반 학교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이기도 했던 그녀는 몇 년 동안 학교 문단속 장치를 맡아 관리했다.

“학교에 갈 때면 문을 잠가야 했어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암 투병 중이었던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건강이 좋아지셔서 제가 학교를 갈 때 가게를 봐주시기도 했었죠. 그때는 손님들도 있을 때라 불편함도 적었어요”

이후에는 학교차량승차도우미를 했다. 가게 문이 닫히는 시간과 겹쳐 5,10분 여유시간에 아이들이 빠르게 나와 과자를 사갔다. 큰 마트가 생기고 가게손님이 줄면서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그녀는 가게를 찾는 학생들에게 참 미안하단다.

“지난해부터는 유치원하모니를 부탁해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오가는 오전, 오후가 바쁘네요”

쉬는 시간인지 한 남자아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씨가 이름을 부르며 맞이했다. 찾는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니 전씨가 대번 알고 입안에 뿌려먹는 스프레이 과자는 떨어졌다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학생이 과자와 사탕류 3개씩 들고 와서는 500원과 100원짜리 동전들을 내민다.

“이젠 가게만 하기에는 힘드네요.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학교도 시골아이들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귀농귀촌한 사람들이나 시내 가까이 사는 아이들이 오지요. 큰딸이 입학할 당시 만해도 입학생이 혼자였지요”

큰딸은 1학년 임에도 3학년 학생들과 같이 공부했다. 둘째딸 만해도 입학생이 많아 동창들과의 추억이 있지만 큰딸은 동네친구가 없어 심심해하고 시내로 이사를 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학교에서 근무하니 학생들이 가게에서 저를 봐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물건을 사고 선생님 하고 부르니 재밌기도 하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성인이 되고 가게를 찾아온다. 결혼해서 가족과 함께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러면 “와, 이 과자는 학교 앞에서만 팔지. 그럼”하면서 추억의 간식을 사간다. 무섬마을을 가다 학교 앞에는 가게가 있을 것이라며 자전거를 타고 오는 이들도 있다. 졸업생들은 때론 배고프다며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해 전씨와 함께 학교 안 정자에 앉아 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곳에서 먹는 라면 맛은 잊을 수 없는 맛이라며 졸업생은 감탄사를 내 뱉는다고.

동네 어르신들은 이 가게를 작아도 알찬 가게라고 말한다. 필요한 것을 말하면 가게 어디에서든 나오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차를 타고나가 시내에서 사오지만 나이 든 어른들은 그렇지 못하죠. 혼자 생활하시고 차도 없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게로 오세요. 그래서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몇 개씩 구비해놓고 있지요”

잠시 둘러봐도 가게에는 다른 시골점방과 달리 형광등, 칫솔, 세제, 끈끈이 등이 보인다. 흔히 보기 힘든 것들이 곳곳에 숨어들어있다.

그녀는 결혼 이후부터 가계부를 써왔다. 지금까지 꼼꼼하게 정리한 가계부는 그녀의 살아온 삶이 들어있다.

“어느 날 옛날 가계부를 보고 남편에게 건넸던 금액도 있어 말했더니 웃더라고요. 그때 날짜를 보면서 무엇을 했었는지 생각이 났어요. 남편이 참 꼼꼼하게 적었다더군요. 전 메모하는 것이 좋아요. 이젠 습관이 됐죠”

이런 꼼꼼함으로 단체나 모임에서 주로 총무를 맡아하고 있다. “우리 딸도, 남편도, 저도 모임에 총무를 맡고 있어 가족모두가 총무전담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래도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니 막상하면 보람이 크죠”

바쁘게 살아도 학생들과 이웃의 어른들을 위해서 가게는 계속 할 것이라는 그녀. 인터뷰를 마치자 가게 밖을 나와 잠시 후 일할 학교를 바라보다 다시금 가게를 오래도록 둘러본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