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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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 친구가 불현듯 전화해서 근처 술집으로 오라고 했다.
활달하고 생활력이 강해 아이들 키우며 복닥복닥 사는 모습이
예쁘고 고마웠는데 왠지 목소리가 불안하다.
벽에 기댄 채 다리를 세우고 앉아 울고 있는 친구를 보니 철없이 나도 상심했다.
나를 보자 인사를 건네려고 하는데 말이 안 나오는 듯했다. 앞자리도 있었지만
나는 옆에 앉아 조용히 자작하며 술잔을 비웠다. 그냥 있어볼 밖에 길이 없다.
나도 친구도 그냥 있었다. 한참 후 나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친구 얼굴이
조금 담담해져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앉아 있다가 헤어질 무렵에 한마디씩 했다.
나와 줘서 고맙고 옆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고, 아무 도움도 못 됐는데 별말씀을.
2년이 흐른 지금 그 친구는 예전처럼 활달하고 생활력 강하게 아이들 뒷바라지 잘하고 있다.
속 썩이는 남편을 슬며시 끌어들여,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서 참 고맙다.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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