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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에서 머럼을 바라보면 멀리 바위가 보여 원암(遠巖)우리마을탐방[193] 문수면 탄산리 ‘머럼(遠巖)’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04.07 14:18
  • 호수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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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13세손 종룡이 샛골서 머럼(遠巖) 입향
효충예(孝忠禮)의 선비마을, 환학암·반학정 남겨

 

머럼 전경

문수면 탄산리 머럼 가는 길
머럼은 무섬마을과 내성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마을이다. 시내 남산육교에서 문수방향으로간다. 적서삼거리에서 적서교를 건너 노벨리스 앞에서 좌회전하여 무섬·와현 방향으로 간다. 와현삼거리에서 좌측 무섬가는 길로 1km쯤 내려가면 도로 좌우로 띄엄띄엄 보이는 집들이 머럼마을이다. 지난달 25일 머럼에 갔다. 이날 원암경로당에서 박찬길 이장, 박영호 노인회장, 서정종 새마을지도자, 민나현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사금골

역사 속의 머럼마을
영주는 태종13년(141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이 됐다. 16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나눌 때 머럼은 영천군 진혈리(辰穴里) 묵암방(묵巖坊)이 됐다. 1750년경 면리(面里)로 개편하면서 진혈면 묵암리가 됐다.

1896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진혈면의 묵암리와 탄산리를 하나로 묶어 탄산리로 통합했다. 또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영천군의 적포면, 진혈면, 권선면을 통합하여 새로운 문수면을 탄생시켰다. 이 때 머럼은 영주군 문수면 탄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학정

‘머럼’의 지명 유래
머럼은 반남박씨 집성촌으로 원암(遠巖)에서 유래된 마을이름이다. 본래 마을이름은 ‘묵암(묵巖)’이라고 영주지에 나온다. 마을 뒷산 자락(반학정 아래)에 묵묵한 큰 바위가 있어 마을 이름을 묵암(묵巖)이라 불렀다. 머럼 입향조 박종룡(從龍,1543-1599)의 아들 박직(朴稷,1571-1647)은 묵암에 살면서 묵묵할 묵(묵)자를 따 자신의 호를 묵암(묵庵)이라 했다.

박찬길(62) 이장은 지명유래에 대해 “종룡 입향조의 증손자이신 수(수,1641-1709) 선조가 머럼에서 무섬으로 이주하여 무섬(水島) 입향조가 되셨다”며 “무섬을 개척한 수(수) 선조께서는 마을을 개척하는데 사력(死力)을 다하셨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강 건너 옛집을 바라봤는데 멀리 큰 바위가 보인다 하여 멀리의 ‘멀’자와 바위 ‘암(巖)’자를 조합하여 ‘멀암’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머럼’이 됐다. 지금 쓰고 있는 원암(遠巖)은 멀암에 한자를 붙이니 원암이 됐다”고 말했다.

 

윤도박물관

 

삼정골

 

사금골

반남박씨 머럼 입향
머럼의 반남박씨는 8세손 판관공(判官公,秉鈞)의 후손이다. 공의 외아들인 승지공(1444-1526)이 1459년(15세) 서울에서 안동 가구리(佳丘里)로 낙남(落南)했다. 그 후 공의 장남 사직공(司直公) 침(琛,1465-1549)이 1500년대 초 영주로 이거하여 문수면 월호리(원창, 원정골)에 첫 터전을 열었다.

머럼마을 박영호 노인회장은 “침(琛) 선조의 둘째 아드님이신 소장(紹張,1493-미상) 선조께서 원창에서 간곡(샛골)으로 이주하여 새 터전을 여셨고, 소장 선조의 둘째 손자 종룡(從龍,1543-1599) 선조께서 머럼(遠岩)으로 살림을 나 마을을 개척하니 이때가 1620년경”이라며 “그 후 종룡 선조의 증손 수(수,1641-1709) 선조가 1666년 강 건너 섬마을을 개척하여 섬계(剡溪)라 이름했다. 저희 반남박가가 머럼에 세거한지 400년이 됐다”고 말했다.

머럼의 선비들
반남박씨 후손 박승수(89) 전 노인회장은 “머럼의 반남인들은 학문을 중시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를 지킨 충(忠)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다”면서 “입향조 종룡 선조는 예빈시판관을 지내셨으며, 임진왜란 때 식량을 내어 군대를 먹이고, 주부판관으로 참전하여 여러 번 승전하셨다”고 했다.

반남박씨 5백년사에 보면 종룡의 아들 직(稷,1571-1647)은 선무랑(종6품문관)을 지냈고, 농(농)은 문명(文名)이요 효자였다. 손자 경안(景顔,1608-1671)은 학행이 뛰어나 지역 인사 공의로 환학암(喚鶴庵,머름동편 무섬맞은편)을 지어 추모했다. 종룡의 손자 경증(景曾,1611-1669)은 수양과 후학을 위해 반학정(伴鶴亭)을 창건했다.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반학정공은 반학정실기와 반학정 팔영을 남겼다.

근세의 인물로는 영주시의회 의장을 지낸 박남서 전 의장은 머럼 출신으로 지금도 머럼에서 산다. 박돈양(1921-1982)은 상주 등 7개군 군수를 지내고, 안동·포항·김천시장을 역임했으며, 박영서(1925-1996)는 청도군수와 대구중구청장을 지냈다. 또 박승억은 영주시청 산업국장, 박춘서는 영주시청 총무국장을 지냈다.

효충예(孝忠禮)의 선비마을
기자가 머럼마을에 가서 길을 물었다. 운동길에 만난 송정희(81) 할머니께서 자세히 안내해 주셨다. “저기는 사그매, 여기는 삼정골, 경로당 맞은편에 감나무골, 집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며 “머름은 조상을 잘 섬기고,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키고, 어려서부터 예를 잘 가르치는 충효예의 마을”이라고 말했다.

장애자 씨

평은 기프실에서 머럼으로 시집왔다는 장애자(77) 할머니는 “오늘이 시증조부님 기일”이라며 “일 년에 설과 추석 그리고 기제사 여섯 번 등 모두 여덟 번 제사를 지낸다. 잘 지내지는 못하지만 정성을 다해 받든다”고 말했다.

박찬문(72) 노인회 총무는 “임진왜란 때 종룡 선조는 의병들의 군량미를 충당하셨고, 주부판관으로 직접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셨다”면서 “또 선대 분들은 6.25 참전용사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 서셨다”고 말했다.

서정종(63) 새마을지도자는 “머름은 작은 일도 서로 돕고 협력하는 마을”이라며 “2004년 경로당을 지을 때 이 마을 출신 박건서(해외제조업) 씨와 박찬우(부동산중개업) 씨가 각각 5백만원씩 찬조금을 내셨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술미(탄산) 마을

첩첩산중 오지마을 술미(炭山) 
내성천이 무섬마을을 360도 감돌아 소두리(수도사) 앞을 지나 다시 우로 휘감는 절벽 위에 9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소발이길 뿐인 오지마을이다. 예전(조선초)에 숯을 굽는 사람이 많아 ‘숯뫼’이라 불렀는데 발음이 변해 ‘술미’라는 속칭을 얻은 마을이다. 그러다 조선 중렵 행정구역을 정할 때 숯 탄(炭)자에 뫼 산(山)자를 써 탄산(炭山)이 됐다.

윤위진 어르신
이정숙 씨

이 마을 윤위진(82)·이정숙(77) 부부는 한마을에 살다 눈이 맞아 결혼한 갑돌이와 갑순이 부부다. 윤 씨는 “6.25전 30가구가 살았는데 빨갱이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혀 1949년 소개(疏開,주민분산)되어 무섬 등 각지로 흩어졌다가 사변 후 10여 가구만 고향으로 돌아왔다”면서 “술미는 강과 산으로 막혀 통하는 길이 없는 피난지”라고 말했다.

부인 이 씨는 “예로부터 술맛(酒味)이 좋아 ‘술미’가 됐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머럼마을 사람들

박남서 전 시의회 의장

민나현(67) 부녀회장은 “마을은 작지만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며 “머럼 출신 박남서 전 시의회 의장은 이번에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맹활동 중이며, 시장·군수을 하신 분도 있고, 자원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 기관단체 대표자 등 많다”고 말했다. 머름이 고향인 김순자(80) 할머니는 “박찬길 이장님과 박영호 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더 살기좋은마을이 됐다”며 “박찬문 총무는 바르게살기 문수면 회장이고, 민나현 부녀

장옥흥 씨

회장은 문수면부녀회장”이라고 자랑했다.

김연랑(85) 할머니는 “예전에 안동 서후에서 가마타고 학가산 쪽으로 산 넘고 물 건너 시집을 왔다”며 “새댁시절 남편은 군에 가더니 5년만에 제대해 왔으니 길고 긴 세월이었다. 담배농사 지으면서 2남 4녀 잘 키웠더니 지금은 효도 받고 산다”고 말했다.

안정 안심이 친정이라는 조남순(82) 할머니는 “남편은 52살 때(1989년) 일찍 세상을 떠나고, 4남 2녀 키우느라 오죽했겠냐”며 “지금은 자식들이 잘 해 줘서 호강하며 산다”고 말했다. 지금 짓고 있는 윤도박물관 옆에 산다는 장옥흥(77) 씨는 “머럼은 무섬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며 “윤도박물관이 준공되면(공정90%) 많은 사람들이 머럼마을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원암경로당
머럼 사람들
박찬길 이장
박영호 노인회장
서정종 새마을지도자
민나현 부녀회장
박승수 전 노인회장
김연랑 할머니
조남순 할머니
송정희 할머니
김순자 할머니
박찬문 노인회총무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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