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공예가 김보영 씨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은 오백년을 가고 종이는 천년을 간다는 뜻이다. 한지 한 장을 만들기까지 백번 이상의 손이 간다고 해서 예로부터 ‘백지(百紙)’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한지로 작품을 만드는 한지공예는 실용성과 장식성이 뛰어나며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또한, 작은 소품에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고가구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봄빛을 닮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갖고 있는 한지의 매력 속으로 푸욱 빠진 한지공예가를 만났다.

▲마음과 정성 쌓여 부끄럽지 않은 사람 되고 싶어
“곰비임비란?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자꾸 계속되는 모양을 나타내는 순 우리말 이예요. 별거 아닌 것 같은 종이도 한 장 한 장 쌓여가며 단단한 작품이 만들어지듯, 제 마음도 이렇듯 단단해지고 싶어요. 손으로 찢으면 쉽게 찢어지는 종이처럼 저도 별거 아닌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한지공예처럼 저도 마음과 마음, 정성과 정성이 쌓여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곰비임비’는 중앙시장에 위치한 김보영(44세) 한지공예가의 작업실 이름이다.

“국문학을 공부한 분이 지어준 이름인데 이 이름을 짓고 난 후로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요”

삼천포가 고향인 그녀는 결혼 후, 2004년 남편의 고향인 영주로 왔단다.

“아이들도 어리고, 친구 사귀기도 힘들고 해서 집에만 있었어요. 시댁 농사짓는 걸 도와주곤 했는데, 시댁 마을에서 어르신들 체험하는 곳에 놀러갔다가 한지공예를 접하게 되었어요”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한지의 매력에 빠져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2008년에 여성회관 평생학습센터에서 본격적으로 한지공예를 배울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경기도 일산, 서울 등 대도시로 다니며 한지와 다양한 분야의 공예를 배우고 있다.

“생활 공예와 학생들이 좋아하는 공예를 배우고 있어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공예를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싶거든요.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을 예쁘게 써야 좋은 작품이 나와
한지공예 보조강사로 활동하며 작품 활동만 하던 그녀는 2014년도부터 지인의 소개로 학교수업을 나가기 시작했으며, 2015년 도시재생사업 공예가 공모에 당선돼 중앙시장에 자신만의 작업실을 갖게 됐다.

“이 분야에 저보다 월등한 분들이 많아서 무척 망설였어요. 서류 마감 날까지 망설이다가 접수를 했는데 당선되었다는 발표를 듣고 정말 행복했어요. 작업공간이 없다는 서러움이 제겐 있었거든요”

그녀는 수업의뢰가 들어와도 자신만의 작업실이 없어, 번번이 수업을 포기해야만 했다고 한다.

“제 공간이 없을 때에는 명함을 건네기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좀 더 당당하게 명함도 건네고 성격도 밝아지고 마음도 많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작업실도 없이 활동하며 받았던 상처들이 지금의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준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여리지만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는 한지를 닮고 싶어 한다.

“작품에 마음이 나와요. 모든 게 다 그렇잖아요. 마음을 예쁘게 써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욕심을 비우고 차분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려고 항상 노력하는데, 모든 걱정이나 잡념이 사라지면서 마음 수양까지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이 매개가 돼 좋은 인연 만들고 싶어
그녀의 작업실에는 조명등, 책상, 부채, 서랍장, 손거울, 티슈커버 등 작은 소품에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고가구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많은 작품들이 집안에 있었어요. 베란다에서 시작해 거실까지 작품이 쌓여가면서 가족들을 많이 불편하게 했죠. 그래도 묵묵히 지켜봐주는 신랑은 저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에요. 제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동행해 줍니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가족에게 고마워서라도 가정에 소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신랑이 시부모님과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곧 농번기가 되면 농사일도 돕고 밥도 해주러 가야해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자신만의 작업실에서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하는 지금이 감사하고 그저 행복하다는 그녀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공예골목으로 더 많은 분들이 놀러오셨으면 좋겠어요. ‘배워야 한다’, ‘사야한다’는 생각은 잊으시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오셔서 작품 감상도 하시고 차 한 잔도 드시며 이야기도 나누고요. 제 작품이 매개가 돼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김미경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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