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은 나라위해 헌신하고 노년에는 종친과 가족위해 살고

유재수 어르신

이산면 용상2리에 다다르면 오르막에서 내리막길로 휘어지는 길 왼쪽에 옛 백룡초등학교가 있다. 1999년 9월 97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이산초등학교로 통폐합된 후 이곳은 영어체험장으로도 사용되었다가 천연염색전문기관 ‘자닮’이 들어섰다.

지난 12일 오전 이산면 두월리로 가던 길에 만난 시골점빵은 가게 상호가 없었다. 옛 백룡초와 용상2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삼거리에 자리한 가게는 도로보다 낮은 위치에 있고 문 앞에는 두 개의 평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열린 가게 문으로 들어서자 할아버지 한 분이 가게 안에 있는 방문을 열고 나온다. 가게 주인인 유재수(90) 어르신이다.

▲‘국가유공자의 집’ 입니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기 전, 문틀 윗부분에 ‘국가유공자의 집’이라고 쓴 종이가 눈에 띈다. 가게 안 오래된 진열장에는 과자, 커피, 라면, 콜라, 맥주, 통조림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이 가득하다.

어르신에게 시골의 작은 가게를 소개하려고 왔다고 인사하자, “가게 내놨어요. 이젠 나이 많아 못해요”라고 말한다. 가게도 소개하고 가게매매안내도 한다니 어르신이 방안에서 종이와 볼펜을 들고 나왔다.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 쯤 마을주민이 가게를 찾아왔다. 딱히 물건을 사기보다는 가게평상에 앉아 오가는 차와 사람들을 보려고 나온 것이다. 어르신이 가게에 대한 매매내용을 쓰는 동안 마을주민이 가게이야기를 꺼냈다.

“인근에서는 가게가 여기뿐이데 없어지면 너무 아쉽지요. 옛날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가게가 북적였어요. 얼마나 많았게요. 그때만은 못해도 지금도 가게는 잘 되는 편이에요. 가게이름은 없어도 사람들은 ‘용상슈퍼’로 부르면 다 알아요”

16세에 이 마을로 시집와서 73년을 살았다는 정정순(89) 어르신은 불편하게 살다 인근의 11개 마을 중 이곳에 가게가 들어서서 좋았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질까 걱정했다.

글을 다 쓴 할아버지가 종이와 함께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앞면에는 어르신의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있고 뒷면에는 어르신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이력이 들어있다. 간략하게 추린 것으로 이런저런 사회활동으로 감투가 많았단다.

명함에는 대한청년단 영풍군훈련교관, 조선경비사관학교 교도대 육사조교반 근무, 육군예비사관학교 졸업 소위임관, 중앙정보학교졸업, 육군 초등군사반 수료, 초대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예비군 중대장, 영주경찰서청소년 선도위원장, 영풍군행정자문위원회 상임자문위원, 6.25참전 국가유공자회 영주시지회장, 강능유씨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했고 대통령표창 동력상 22호 수상, 국방부장관 공로표창 1323호 수상, 6.25참전 호국영웅기장 수령이라고 적혀있다.

육군 대위출신인 어르신은 처음 군대생활은 철원 2사단에서 시작해 18년간 군대에 있었다. 영주에서는 예비군 중대장으로 12년을 일했다. 6.25참전 때는 평양에서 있었단다.

명함에 첫 번째로 써 놓은 대한청년단 영풍군훈련교관을 할 때가 20대 초반이었다. 조선경비사관학교 교도대육사 조교반 근무당시에는 사관학생들을 가르쳤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해주려는지 올해 지원금이 올랐더라고요. 점점 인원이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 마을에도 국가유공자가 4명 남았지만 2명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어르신은 영주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난 후에 이 마을에 터를 잡았다. 농사를 지을 줄 몰라 위치가 좋고 해서 가게를 차렸단다. 30여 년 전 일이다.

지금도 담배가 있어서 오가는 사람도 많고 시내가 그래도 멀지 않아서 전화 오면 배달도 잘 온다. 그래서 가게를 그대로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다.

▲많은 일들 겪고 이젠 좀 쉬려고

이야기 중간 가게 앞에 차 한 대가 서서 잠시 대화가 멈췄다. 가게에 손님이 온 것 같다고 말하니 어르신은 아니란다. 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자는 마을주민과도 친분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눈다.

그가 어르신에게 “다음주 화요일에 하기로 했다”며 “시간이 없어 전자우편으로 77집에 보냈는데 한 20명 정도 온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말한 후 인사하며 떠났다. 어르신이 영주 강릉유씨 종친회장이기 때문에 ‘종친회 모임’에 대해 총무로써 알리려고 온 것이란다.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아버지 고향마을에 와서 대통령출마 선언할 때도 내가 소개했어요. 유수호 판사의 환갑 때도 사회를 봐달라고 해서 대구에 갔지요. 고등법원장, 대법원장 등 판검사 100명이 있는자리였어요. 집안 어른이고 말도 잘하니 부탁한다고 그래서 수락했죠”

지금보다 젊을 시절에는 사회활동도 많이 했다는 어르신은 대한청년단 영풍군훈련교관 때를 떠올리며 각 면에서 대표를 선발해 훈련을 나가면 ‘앞으로가, 뒤로가’하며 시범을 보였다고 했다. 당시 경북에서 열린 대회에서 어르신이 1등을 거머쥐며 유명인사가 됐었단다. 이후 여러 단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해 왔다.

“국가유공자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내 팔자가 이상한지 아내도 가게를 지어놓고 하늘로 가고 몇 년 전에는 맏아들도 잃고 지난해는 맏딸도 잃었어요. 동생 두 명도 먼저 갔지요. 몸도 마음도 참 힘드네요”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며느리가 안쓰럽게 느껴진다는 어르신.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면서도 어르신의 식사를 챙겨준단다. 서울에 사는 며느리도 사골국물이나 반찬 등을 택배로 보내줘 고맙다고. 7남매를 둔 어르신은 이젠 한 가지만 해결하면 걱정이 없단다. 바로 손자의 결혼이다.

“서울대학원을 나온 맏손자는 친구소개로 고등학교 다니는 교사를 만나 결혼했어요. 손부가 오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데 얼마나 예쁜지요. 손자가 결혼을 참 잘했어요. 이젠 둘째손자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아파트도 구입해 놨다던데 결혼만 잘 하면 이젠 걱정이 없어요”

어르신은 가게용도로 고스란히 넘기길 원한다. 가게는 조만간 다른 주인으로 바뀌겠지만 그래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가게 앞에 놓아둔 두개의 평상에는 주민들이 찾아와 머물다 갈 것이다. 탁주도 한 잔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정씨 어르신이 “화장지 가져 왔니껴”하고 물으니 유 씨 어르신은 “저것도 주대. 맛소금”이라고 답한다. 마을경로당에서 윳놀이와 화투를 하고 받은 선물이야기다. 그러자 “할배는 이겼나보네. 나는 져서 없고. 맛소금도 1천700원이라는데...”라며 아쉬워했다.

= 슈퍼 매매 =
· 이산면 용산2리 백룡초등학교 정문 앞 2차선 3거리
· 건물 - 수퍼마켓 26평, 구 기와집 8칸, 저온저장고 15평
· 점방 물건 - 약 3천만원
· 연락처 054-637-4750,010-6374-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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