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점분교와 느티나무들 그리고 추억, 세월 따라 모습은 변해도 그 자리에

옛날엔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지, 바글바글했어...

유난히도 넓어 보였던 운동장, 높게만 느껴지던 담벼락, 수십 명이 앉아 공부해도 넉넉해 보였던 교실 등등,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리운 모습들이다.

그리고 누구나의 추억 속에 자리할 학교 앞 가게가 있다. 가게 앞에 서서 없는 돈에 군침만 흘리기도 하고 빛깔 좋고 양이 많은 불량식품을 친구들과 나눠먹고 준비물, 공책, 연필 등을 사러 자주 드나들었다.

지난 2일 오후 순흥면 배점2리 조용한 시골마을에 ‘산불조심을 합시다’라고 방송이 울려 퍼진다. 산불조심 방송차량이 배점분교 앞을 지나 윗마을로 갔다가 다시 배점분교 앞으로 내려왔다.

배점주차장을 가기 전 배점분교 방향으로 오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웅장함을 자랑한다. 그 앞에 ‘배점상회’가 있다. 지금은 간판도 없고 3년 전 집을 개조하면서 처음의 위치에서 옆으로 이동했지만 작은 가게가 주는 정감어린 정취는 그대로다. 그곳에는 40여 년 전 가게를 인수하고 자리를 지켜온 권옥희(85) 할머니가 여전히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이렇게 계시니 반갑네요”
배점상회 앞에는 세 그루의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1982년 10월 보호수로 비석이 세워졌고 수령이 400년이라고 쓰여 있다. 그 이후로 36년이 흘렀다. 이 나무들과 함께 자리한 가게는 안쪽 마을에 살던 권씨 할머니의 둘째 딸이 4학년 되던 해에 가게를 인수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옛날에 많을 때는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지. 바글바글했어. 그때는 공책, 연필, 딱지, 장난감 등 다 팔았지. 과자 같은 군것질 거리도 있고. 애들 키우면서 바쁘게 살았지만 장사도 잘 되고 괜찮어. 학교에 유치원 애들도 있고 복작거렸는데... 근데 애들이 점점 줄었지”

배점분교는 1940년 순흥심상소학교부설 배점간이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그해 9월 개교했다. 44년 배점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고 85년에는 병설유치원을 개원했다. 93년에는 순흥초 배점분교장으로 격하 편입된 후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2008년 3월 폐교됐다.

방문했던 이날 한 주민(80세)이 가게를 들어왔다. 소주 한 병을 시켜 학교 교실에나 있을 책상에 올리고 걸상에 앉아 잠시 쉬며 술 한 잔을 마셨다. 가게 소개하려고 찾아왔다고 하자, 자신이 배점분교 6회 졸업생이라며 그때도 가게가 있었단다.

그는 “영주 시내에서 살다 5학년 때 배점으로 들어왔어요. 우리 얘들 일곱 명도 여기서 졸업했지요. 옛날에는 가게손님이 많았어요”라며 “이젠 사람도 점점 줄고 마을마다 만물트럭이 들어가니 더하지요. 이 가게 홍보 좀 해주소”라고 말한 후 가게를 나간다.

3개 마을 중 이곳 가게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할머니는 “이젠 아무것도 못하고 팔리면 팔리고 노는 냥으로 하고 있다”며 “옛날에는 방이 가게였고 골방삼아 쓰던 것을 가게로 고치고 가게자리는 방으로 만들어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오랫동안 가게물건은 전부터 거래하던 사람들 중 한명이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가져온단다. 그것도 이젠 일 년에 두 번 정도 부른다.

“사나흘에 한 번 만물차가 오는데 나이든 사람들은 집 앞에서 사지. 급하면 한 가지 사러오는데 손자손녀가 와도 손잡고 옛날처럼 가게에 오지는 않아. 날씨가 더우면 자주 모이는데 가게 앞 나무그늘에 모여 술 한 잔씩 하지. 엄청 시원해”

할머니에게 노인정은 먼 곳이란다. 거리도 멀지만 가끔 가게를 비워놓고 가면 담배 사러 온 손님들이 찾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있기 무료하시겠다고 묻자, 하루에 많이 올 때는 5명쯤 오고 안 올 때는 한명도 없지만 가끔씩 찾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처럼 이렇게 얘기도 나누면 재밌고 괜찮단다.

“이 동네 살다 나간 사람은 내가 있나 한 번 찾아와 들여다봐. 동창회하면 몇몇이 폐교된 학교도 둘러보고 가게가 아직도 있다고 반가워하고 가지. 나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고. 자주 들리는 사람들은 기억이 나”

아들딸 친구들이 찾아오면 더욱 반갑다는 할머니는 “아직 계셔서 좋네요. 건강하시네요. 반갑네요”라고 말하며 찾아와주니 고맙다고.

제일 기억나는 것은 옛날 개구쟁이들이 장성해서 오면 참 새삼스럽다.

▲“얼마나 할지는 몰라도...”
가게엔 오래 놔둬도 변질이 덜되는 물건들만 놔둔다. 유통기간이 긴 베지밀이나 음료수, 과자 등등. 농사철이면 급하게 간식을 사러오기도 한다.

밖에 잘 못나가니 동네사람들이 찾아오면 마을소식을 듣는다는 할머니. 대부분이 “누가 아프다, 누가 어떻다더라,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등의 소식이다.

“이젠 나이 많고 힘이 없어 다른 일은 못하고 놀기에는 지루하고 해서 이렇게 사람이 찾아오면 얘기 나누며 이렇게 날짜나 보내며 살어. 그래도 몇 푼이라도 돈이 들어오면 쓰고 싶은데 쓰지. 남았는지, 부족한지를 신경을 쓰지 않아. 장사 밑천 없으면 노령연금 타서 넣고 해”

가게 앞 도로만 있을 때는 등산객들이 오가며 배고프다고 라면도 끓여달라면 금방 끓여줬다. 폐교되기 전에 가게 뒤편 도로가 생겼는데 그때만 해도 할머니 나이 60대 중반이라 도로 공사하는 인부들 밥을 다 해줬다. 가게도 하고 밥해주고 몇 달은 바쁘게 지냈다.

“지금은 사람구경을 잘 못해. 가끔 느티나무하고 배순의 정려비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오지. 옛날에 찾아왔던 사람들은 알고 가게에 들어오고”

가게가 잘된 옛날에는 5남매를 키우고 학교를 보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가 자녀들이 학교를 모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사가 덜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하나님이 희한하게 아시고 바쁘게 살았으니 이젠 적당히 벌고 쉬라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단다. 할머니는 학교가 폐교 되면서 버려진 책상과 걸상을 가게 안에 들여 놓았다. 걸상에 앉은 할머니는 책상을 한번 손으로 쓸며 가게를 둘러봤다.

“지금도 얘들은 하나마나한 장사라고 그만두라고 해. 그래도 가게하면서 얘들도 키우고 먹고 살았는데 노느니 뭐해 살아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려고”

가게 앞 논이었던 곳은 7년 전부터 사과밭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가게에서 넓게 펼쳐진 자연 풍광은 보기 힘들다. 그래도 할머니는 봄이 오고 사과 꽃이 피면 예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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