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 본지 논설위원)

지혜로운 판결이라면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이 생각난다. 솔로몬의 재판은 현명한 판결의 한 상징이다. 꿈속에서 소원을 밝히라는 말에 지혜를 달라고 기원하여 계시를 받았으므로 솔로몬의 슬기는 신의 경지일 것이다. 권세도 부도 아닌 지혜 얻기를 소망한 것부터 예사로운 일은 아닌 듯하다.

어느 날, 두 여인이 한 아기를 안고 솔로몬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각기 제 아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 한 날 한 시에 아기를 낳았는데 한 어머니는 아기를 깔아 죽이고 말아 아기를 바꿔치기했다. 두 여인은 솔로몬의 지혜를 소문으로 듣고 찾아온 것이다. 솔로몬은 사연을 들은 후, 큰 칼을 가져오게 했다. 자기 아기라고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이어 ‘아기를 반으로 나눌 테니 반씩 갖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칼로써 반으로 나눈다는 것은 아기를 죽인다는 말이다.

이에 한 여인은 ‘양보할 테니 저 여인에게 아기를 주라’고 울부짖은 반면 한 여인은 ‘그렇게라도 해 달라’고 대답하여 끔찍스러운 재판을 받아들인다. 이쯤이면 누가 가슴에 모정을 품은 생모인지는 드러난다. 제가 낳은 아기를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 어머니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인이 벌인 고소 사건에 솔로몬이 재판관이 되어 절묘한 방법으로 진위를 밝혔다.

‘고소’와 ‘고발’은 어감으로도 적잖게 경계심을 자아낸다. 경찰서를 드나들고, 법복을 입은 근엄한 판사가 굽어보는 법정이 그려지는 탓일 것이다. 고소는 범죄의 피해자, 또는 그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고소권자가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여 범인을 처벌해 주기를 기대한다.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고소할 수도 있다. 피해자가 사망한 때에는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에게도 고소권이 있다. 다만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대상으로 고소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고려한 제한일 것이다.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여 공소가 제기되기를 기대하는 의사표시로서 고소와 고발은 동일하다. 하지만 고발은 고소권자 이외의 제삼자가 범죄를 신고하여 처벌을 요구한다.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범죄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대상을 고발할 의무가 있다.

수사기관을 찾아가 구두로 처리를 요구할 수도 있고, 서류를 작성할 수도 있지만 어떤 방식이든 고소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법적인 문제에 연루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는 말이 있다. 송사가 심신을 고달프게 만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으로부터 계시 받은 지혜로써 재판을 했지만 솔로몬을 찾기 전에 두 여인이 진실을 가려 아기가 제 어머니 품에 안겼다면 소망스러운 일이다. 최선은 솔로몬에 앞서 문제를 어머니 둘이서 해결하는 경우이다.

법이란 아무리 권위를 자랑해도 도덕의 아래에 존재하는 하위 개념이다. 도덕이 허물어짐으로써 강제력을 지닌 법이 생겨났을 것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에는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도덕에는 배려와 양보가 있어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고소와 고발이 넘치는 사회에 사는 것 같다. 충북대 박강우 교수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의 경우, 경찰에 접수된 고소와 고발은 41만8,714건으로 인구 1만명당 86.8건이다. 전체 형사 사건의 20%에 해당한다. 이웃나라의 1만6,958건, 인구 1만명당 1.3건보다 66.7배나 높다. 고소와 고발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인데 2015년은 51만여 건이라고 한다.

기소되지 않은 사례도 많다고 한다. 기소율이 낮은 것은 법률 요건을 못 갖추었거나 혐의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감정적인 분노를 드러낸 경우도 많은 듯하다. 대화로 해결할 사소한 문제도 고소부터 하자는 풍조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법적 해결은 자칫 불신의 앙금을 남긴다. 양방 모두에게 상처뿐인 결과가 주어질 수도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불신과 대립이 팽배한 현실에 비추어 우리 고장의 ‘선비정신 실천운동 본부’에서 선포한 ‘선비정신 실천 강령’이 되새겨진다. 사회적인 병리현상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고 윤리의식을 선양하기 위한 ‘선비정신 실천 강령’에 이은 ‘선비정신 실천매뉴얼’은 강령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구체화했다. 실천운동 본부가 앞세운 ‘이제는 실천이다’라는 목표를 따라 선비정신의 가치가 현실과 괴리되는 문제를 해소한 것이다.

영주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근원이자 선비문화의 본향이다. 전국 단위 유교관련 행사는 안향선생의 초상을 모신 소수서원 일원에서 개최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사와 예절로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모든 행위의 기준인 예(禮)를 실천한다. 우리는 신의와 정직으로 사람들 사이의 약속인 신(信)을 실천한다’ 등의 강령을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매뉴얼’을 생활화하면 영주시가 ‘선비문화의 수도’로서 온 나라를 이끌며 앞서가는 ‘행복도시’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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