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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문화확대경[137]최초 백과사전의 저자 초간 권문해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02.05 17:06
  • 호수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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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는 1534년 7월 24일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대수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에게 글을 배워 19세에 향시에 장원급제하고, 20세에 현풍곽씨와 혼인을 하고 23세에 퇴계 이황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학봉 김성일,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등과 공부하였다. 27세에 급제하고 출사하기 시작하여 10여년간 조정에서 형조좌랑 예조정랑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37세가 되던 1570년 영천(榮川, 오늘의 영주)군수를 시작으로 안동부사, 청주목사, 공주목사를 역임하고 귀향하여 49세가 되던 1582년 2월 초간정사(草澗精舍)를 건립하였다. 그해 6월에는 30년 결혼생활의 첫 부인 현풍곽씨와 사별하고, 51세에 함양박씨와 혼인하여 56세에 비로소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으나, 세살배기를 두고 1591년 8월 좌부승지를 끝으로 그다지 길지 않은 5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초간은 한민족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라는 대 저서를 남기면서 틈틈이 일기를 쓰고, 시(詩)도 250편을 남길 만큼 우수한 문학자이자 국학자였다. 죽음을 2년 앞두고 완성한 <대동운부군옥>은 20권 20책으로 조선의 역사와 지리, 문학, 예술, 풍속, 인물, 동물, 식물 등을 망라하여 운별(韻別) 분류한 실학서이다. 단군부터 5000년 유구한 역사를 수록하였고, 등장인물만도 총 1,101명이나 되는 방대한 규모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완성 전부터 그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완성 후에도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등 많은 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는 이런 대단한 국학 저술을 위해 26세부터 56세에 완성할 때까지 가히 평생이라 할 수 있는 30년을 숱한 고생으로 정진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자식이 없던 30년 전처와 사별하고, 재혼하여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이 아들을 얻음으로서, 임종을 앞두고 두 가지 소원을 한꺼번에 해결한 셈이 되었다. 그 두 가지 후사가 모두 대단하여 저서 <대동운부군옥>은 가히 국학의 바다라고 불리어지고 있으며, 아들 역시 조선 인명 백과사전 격인 <해동잡록>을 저술한 학자로 성장하였다.

<대동운부군옥>은 만일을 대비해 3질을 만들었다. 선견지명이었다. 초간은 성주의 한강 정구(鄭逑)가 빌려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빌려주었다가 얼마 뒤 한강의 집에 불이 나 한줌의 재가 됐다. 2년 뒤 동문수학한 학봉 김성일이 찾아왔다. 이런 대단한 책은 나라에서 인쇄해야한다고 자신이 홍문관 책임자가 된 뒤 한 질을 넘겨받아 간행을 준비하는 도중 이번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난리 통에 간 곳이 없어졌다. 집에 한질을 보관하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 뻔 했다. 이것으로 후손들이 목각을 해 두었다.

<초간종택>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대수[竹藪대숲]마을에 있다. 조선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인 금당실 외곽 한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곳에서 초간은 480여 년 전 태어났으며, 퇴계의 문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초간종택은 특이하게도 대문이 없다.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대소재(大疎齋)’란 편액이 걸린 높다란 사랑채가 나타난다. 이 건물이 보물 제457호이다. 마루를 올라서면 금당실 들판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백승각(百承閣)’이란 별도 건물은 <대동운부군옥> 목판이 보관된 곳이다. 1776년에 제작된 목판은 모두 667개. 보물 제8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간정>
<대동운부군옥>이 편찬된 곳은 바로 초간정(草澗亭)이다. 초간이 파직 당한 이듬해인 1582년에 지은 건물이다. 초간종택에서 북쪽으로 3㎞쯤 떨어진 곳, 냇물이 휘돌아 흐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문화재자료 제143호이다. 초간은 초간종택이 있는 대수마을에서 영금재-동산재-가목이-빈틋골-감나무골-남티-사시남박골을 거쳐 이곳 초간정까지 길을 오가며 대 저서를 집필하였다. 용문면 용문경천로 874.

당초 이름이었던「草澗精舍(초간정사)」는 소고 박승임이 명명하였고, 그의 친필 현판은 지금도 벽에 높이 걸려 있다. 초간은 영주군수 시절 이산서원의 누각을 세운 것으로도 기록되어 있어 영주와 인연이 깊다.

<용문사>
초간은 24세 때 용문사에서 공부하였다. 이 때 침식을 잊을 정도로 혹독하게 파고들어 밤을 밝힐 등잔 기름이 늘 모자랐다고 한다. 1559년 겨울 어느 날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개탄한다. 역사를 두고서다. 그리고는 평생을 이 작업에 매진하게 된다. 그로부터 30년 후 순전히 그의 손에 의해 역사적인 <대동운부군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주문에 「小白山龍門寺」라고 현판이 걸린 이 절은, 희방사 창건주인 두운조사가 870년(경문왕 10) 창건하였다. 건립 당시 세 가지 기이한 일이 있었다는데, 첫째는 창건주를 용이 영접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은병을 캐어 부족한 공사비를 충당한 일이며, 셋째는 절 남쪽 청석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할 때 오색구름이 탑 위를 돌았다는 희한한 절이다.

보물 제145호로 지정된 대장전(大藏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684호 윤장대(輪藏臺), 보물 제729호 용문사교지, 보물 제989호 목각 후불탱화 등의 문화재가 있다. 용문면 용문사길 285-30(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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