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말 잘하는 사람은 국회로 보내고, 인물 좋은 사람은 연예계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가만히 뜯어보면 말주변 없는 국회의원도 있고, 개성 있는 얼굴의 배우와 가수들도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옛날 시골 장터에는 약장수라고 불리는 이들이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다가 만병통치약을 몇 개 팔고 떠난 뒤에 그 약효를 겪은 이들이 ‘속았다’고 투덜거리는 모습도 보았다. 요즘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많아져서 이런저런 사연과 숱한 광고를 접하게 되었는데 라디오를 끈 뒤에도 기억에 남는 말은 주로 짧은 캠페인 문장이다. 마치 청소년 때 공부방 책상 앞 벽에 붙였던 좌우명 같은 말이 그것이다.

우리네의 삶은 매우 복잡한 것 같으나 따지고 보면 결국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기, 듣기, 그리고 쓰기가 그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피를 잉크로 찍어 쓰는 것이며, 말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전달하는 방법이나 가장 어려운 것은 듣는 기술이라고 한다. 특히 경청은 매우 중요한 경영 커뮤니케이션 기법으로 부상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경청이란 듣는 기술이 아니라 두 귀로 타인을 설득하는 기술임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현장에서 팀장들로 하여금 말수를 확 줄이고 대신 팀원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도록 한 결과,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자신의 의견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엄청난 성과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 커뮤니케이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말 재주가 없다고 둘러대며, 자신의 불통의 원인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을 흔히 경험하게 된다. 특히 학벌이나 지식의 계단이 높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울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게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대개 상대방이 자신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거나, 또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야구에서 피처만 있고 캐처가 없는 것을 상상해보라. 귀를 못 알아듣게 한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면 이러한 ‘만성 소통장애증’에 이르게 되고 이의 치료는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소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쉽고 단순하게 핵심을 말해야 한다. 이것은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 상대방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 내용보다도 전달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에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부부간이나 자식과의 대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살았다고 하는 어느 외국인 작가의 말에서 깨닫는 바가 크다. 그는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의사소통할 수 없는 이유로 문화적 장벽, 언어 장벽을 들먹이지만 한마디로 그건 핑계라고 일축한다. 사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대화는커녕 비즈니스나 연애가 이루어질 리 없다.

우리나라 익은 말(속담)에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게 있다. 심지어는 ‘절에 가도 말만 잘하면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말도 있다. 말을 잘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말이란 것이 결국 그 사람의 가정교육이자 살아온 인생의 향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소위 필화보다 설화(舌禍)가 더욱 자주 발생하며 그 파괴력도 훨씬 큰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말을 잘한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통은 달변가를 두고 “그 사람 말 한번 참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달변가가 반드시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언행의 신뢰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달변가들은 역으로 입만 번지르르 하다고 하여 약장수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오히려 눌변(訥辯)이라 해도 얼마든지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결국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얼마 전에 들른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 학생이 음식을 내놓으며 “맛있게 드세요”하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웃으며 “일단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잘 먹을 게요”했다. 옆에 앉았던 지인이 옆구리를 꼬집으며 “그냥 먹지”했다. 다행히 음식은 맛이 괜찮았고, 지나가는 그 학생에게 “맛있게 잘 먹네”했다. 빙긋 웃었다.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인 이유를 다시 한 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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