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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프리즘[74]분단의 역사권서각(시인·문학박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02.05 16:21
  • 호수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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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는 다른 나라에 의해 결정되곤 했다. 그 처음이 가쓰라-테프트 밀약이다. 1905년 7월 일본 외상 가쓰라와 미국 국방장관 테프트가 일본에서 만나 맺은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하기로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후 일본은 8월 영·일 동맹, 9월 포츠머스조약에서 세계열강들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을 받게 된다. 그해 11월 을사늑약을 통해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했으며 미국은 이를 인정했다. 1910년 드디어 경술국치를 통해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다음이 얄타회담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임박하자 1945년 2월 소련의 남쪽 크림반도 얄타에서 2차 대전 전후처리를 위한 회담이 열렸다. 여기에서 미국은 소련이 일본을 공격하면 노일전쟁에서 일본에 빼앗긴 것을 소련이 다시 찾게 하겠다고 했다. 소련이 관동군과 교전한지 7일 후에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패망했다. 사실상 소련의 도움 없이도 승전이 가능했기에 미국의 이 제안이 종전 후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소련은 한반도 북쪽 청진, 원산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이며 남하했다. 미군이 아직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북위 38도선을 소련에 제안하고 남쪽에 주둔한다. 사실상 한반도가 분단이 되는 순간이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구 주석을 비롯한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임시정부에서는 광복군을 창설하고 미국과 중국의 도움으로 조선반도에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이청천 장군을 사령관으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일본의 패망은 우리 힘으로 나라를 찾겠다는 계획이 무산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외세에 의해 해방이 된 것이다. 이는 우리민족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되었음을 뜻한다. 한반도 남쪽에 주둔한 미 군정청은 임시정부 요인들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입국할 것을 요구했다.

해방 전 임시정부에는 좌익, 우익, 민족주의, 아나키스트 등의 다양한 정치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했다. 물론 얼마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사상을 넘어서 오로지 나라를 찾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해방공간에서도 여운형, 김구 등은 통일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끝까지 분단을 반대했다. 1948년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이어서 북쪽에서도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한국전쟁도 우리의 전쟁이 아니었다. 소련의 무기와 중국 군대와 미군이 전쟁의 주역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 강대국에 의해 전개되었다. 우리의 진정한 우방은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우방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민족끼리 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성조기를 흔들고 이스라엘 기를 흔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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