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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점빵❷ 무섬 가는 길 머무는‘이발관수퍼’오랜 친구처럼 그 자리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식장소로
  • 김은아 기자
  • 승인 2018.01.28 14:37
  • 호수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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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는 즐기면서 살아야지. 그게 인생이지”

무섬으로 향하는 길, 문수면 적동리 삼거리에서 월호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월호교가 나오고 다시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른다. 내리막이 시작되자, 옛 정취가 남아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와현교회, 나무여닫이 문이 그대로인 가게, (구)문수초등학교 등등. 그 앞에서 무섬으로, 안동으로, 예천으로 길이 나뉜다.

옛날에는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이 장소에 여전히 자리잡고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는 ‘이발관수퍼’(대표 강용근). 언제든지 방문해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반가운 오랜 친구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물, 사람 좋은 월호리에서
농촌마을에 간판 없는 작은 구멍가게는 주민들의 사랑방이며 따뜻한 정과 마음이 오가는 장소이다. ‘이발관수퍼’는 상주가 고향인 강용근 대표가 어릴 적 고향을 떠나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 다니다 1980년 문수면 월호리에 자리 잡고 가게를 인수했다.

“살다보니 이곳이 사람들도 좋고 물도 좋고 정도 쌓으며 살아가요. 옛날에는 이곳도 정미소 옆, 경로당 자리, 공터 등 가게가 너 댓개 있었고 이발소도 2개나 있었어요. 지금이야 우리만 남았는데 이발소도 바쁠 때는 바쁘고 없을 때는 아예 없고 그렇지요. 영감, 할마이 먹고 살만큼은 돼요”

가게 물건들이 정리정돈이 잘 돼 있다. 강 대표는 아내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만 정리한 것이라고 겸손하게 답한다. 이곳은 마을주민들도 많이 찾아오지만 시내지역은 물론 타 지역에서도 많이 온단다. 가까운 곳에 가게가 없기 때문에 가게를 중심으로 ‘빙~’ 돌아 안동, 예천, 장수, 평은 등에서도 많이 찾는다고.

‘이발관수퍼’라는 간판 이름은 15년 전쯤 걸렸다. 특이하다. 눈에도 확 들어온다.

“처음에는 간판이 없었지요. 인수할 때도 그랬고. 동네수퍼나 구멍가게마다 나랏법이 바뀌고 신고하고 세금을 내야 하니 간판을 걸었어요. 원래는 수퍼는 ‘와현상회’래. 이발하러 오는 사람이 간판이 자꾸 작다고 해서 ‘이발관 수퍼’로 바꿨고”

강 대표에게 나이를 묻자, 일부러 염색한 듯 은은하게 퍼진 회색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는 나이가 없다. 나이가 뭔 필요가 있는가”라고 답한다.

“나는 현재에 맞춰 살아가요. 오늘 잘 살았으면 내일 걱정은 하지 않아요. 인생은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오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고, 돈이 없으면 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거든. 젊어서 자식이 있고 부양할 가족이 있어 열심히 살아왔다면 나이 들어서는 즐기면서 살아야지. 그게 인생이지”

마음을 비우면 편안하다는 그는 자녀들에게도 깨달으면서 성장하는 방식으로 가르쳤단다.

“맞아봐야 아픈 줄 알고 돈도 써봐야 중한지 알아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죠. 깨닫고 성장할 일을 부모가 다하면 의지만 하게 돼요”

그의 남다른 신념에 자녀들도 손자손녀들에게 공교육보다는 언제든지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산교육을 가르친다고 했다.

▲언제나 ‘띵똥’소리 울리면
지난 18일 수퍼 안에서 인터뷰 도중 ‘띵똥’하는 소리가 울렸다. 마을주민이 이발관 문을 연 소리다. 양해를 구한 강 대표는 수퍼에서 이발관으로 향했다.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한 주민이 이발 상담으로 들렸단다. 오랜 단골손님이라 이런 저런 마을이야기가 오간다.

대화 중 다시 ‘띵똥’하는 소리가 났다. 수퍼에 손님이 온 소리다. 물건을 팔고 다시 이발관에 온 그가 단골손님에게 “아내가 아침에 시내 병원에 가서 마치고 연락이 오면 데리러 갈 것”이라고 말한 후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이발업을 한지 50년이 넘은 그는 두 귀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상담자도, 조언자도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이를 다 키우고 사람들과 정도 들어 친구 같은 주민들과는 어느 날은 소소한 자신의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아직까지 크게 아픈 곳이 없어 감사해요. 나의 일이 이발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발을 하는 날까지 최상으로 잘하기 위해 힘쓰면 된다고 봐요.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당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볼 때 후회 없겠죠”

그는 지금까지 이발소에서 두 번이나 현금 1천400만 원 정도를 주웠단다. 단골손님이 신문에 둘둘 말아 놓고 간 것을 찾아준 것. 사례를 하겠다는 것을 거절했다.

“모임에서 놀러 가는데 비용을 대신 내 달라고 해서 내는데 다음에 갚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러면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이 밥을 살 때 내가 몇 번 덜 사면 돼요. 저는 자식들에게도 올곧게 살면서 융통성을 발휘하며 살라고 하죠. 그게 사는 멋이 아닌가요”

지난 22일 오후 다시 찾은 ‘이발관수퍼’. 작은 이발관 안에는 이발을 하러 온 주민들로 가득(?)했다. 이날도 일상의 안부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띵똥’소리와 함께 들어간 수퍼에는 강용근 대표의 아내가 자녀들에게 택배로 보낼 음식들을 바쁘게 싸다 웃음으로 반긴다.

김은아 기자  haed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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