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가흥2동 권정희 할머니

혼례, 제례용품부터 전통공예품까지
삶의 이야기 담겨있는 물건들 모아

“나는 밭에서 일하다 나온 작은 사기그릇 조각들도 이렇게 모아놨지. 그 조각들을 보면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라고. 언젠지는 몰라도 쓸모가 있었을 거 아닌감. 쓰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

가흥2동에 사는 권정희(74) 할머니의 말이다. 권 할머니는 봄, 가을이면 강변1차 아파트 입구나 가흥현대아파트 앞에서 직접 농사지은 각종 야채를 판다.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저 농산물을 팔러 나온 할머니로 생각한다.

제보한 강변아파트 주민은 “필요한 농산물을 조금씩 사다 더 필요해 한 번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안 곳곳에 꽉 들어찬 물건에 감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어르신을 “옛 물건을 모으는 할머니”라고 소개했다.

시내와 조금 떨어진 할머니 댁을 방문하자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단독주택이다. 살고 있는 주택 옆의 창고와 조금 떨어진 옛날 집의 방안에는 옛 물건들로 가득했다.

집 밖 구석구석에도 옛 농기계부터 방태기 등의 생활용품, 밭을 가는 소코뚜레, 멍에, 죽통, 질마 등 다양했다. 이중에 멍에는 할머니가 구한 것들이다.

지금은 창고로 쓰이는 방안에서 꺼내든 것들은 옛날 돈, 청첩장, 사돈지, 편지, 문서 등이다. 한 쪽 벽면에는 패랭이와 베로 짠 100년이 넘었다는 상주가 입던 옷도 걸려있다. 상주 옷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빌려줬었단다. 결혼과 제사 등에 사용하는 다리가 긴 교자상도 꺼냈다. 이 교자상은 못 없이 짜서 맞춘 것으로 온 동네에 중요행사마다 빌려줬다.

누가 봐도 오래돼 보이는 목침도 여러 개다. 종갓집 장손인 남편(정영대. 78)과 결혼해 많은 손님이 오가다보니 100개 이상 됐던 목침은 거의 없어지고 남은 것들이다. 찬합도 100년이 넘었다며 편지나 문서를 들고 가는 동안 먹을 적, 떡 등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했단다. 부자들이나 사용한 치마, 저고리 등을 담는 가구도 가리키며 도포와 명주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어둡고 작은 창고로 이동하자 그곳에는 맷돌부터 낫, 도자기그릇, 호롱, 놋대야와 그릇, 국자, 쇠주걱, 옛날 소주병, 60~70년대 간장병과 술통 등이 가득하다.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요강과 다듬잇돌, 저울, 따비 등도 있단다. 돌아보는 동안 꼭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다.

주택으로 들어서는 입구 한쪽에는 조각난 도자기들이 가득하다. 그것들을 보면서 할머니는 “농사를 짓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라며 “오랜 세월 지나온 물건도 있을 것이고 얼마 안 된 것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살면서 소중하게 쓴 물건인데 버려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더라”고 말하며 하나 둘씩 모은 것들이 이렇게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집 안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할머니, 20년 전부터 모으기 시작한 물건들에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6남매가 모두 그만 모으라고 하지. 내가 없으면 아무도 무엇인지 모를 거야. 삼년상을 치룰 때 상을 차렸던 ‘반’이라고 누가 알겠어. 이름을 적어야 돼. 원래 있던 것도 있고 사람들이 나보고 가져가라고 해서 가보기도 해. 이런 물건들 죽을 때까지 모으고 사랑하고 싶어”

할머니는 봄, 가을이면 꽃모종을 가져다 놓고 판다. 집 주변에 식물이 가득하다. 요즘 구하기 어려운 옛날 수수씨앗도 찾는 사람들이 있어 팔고 있다. 필리핀출신 새댁들은 고향의 맛을 찾아 여주를 사러 찾아온다.

권정희 할머니는 “봄에는 시장에 나가고 여름에는 틈틈이 아파트 앞에 가고 옛 물건이 버려져 있으면 주워 보관하며 지금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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