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에서 작은 구멍가게로 주민과 행인들 머무는 쉼터

“시골인심이 좋아 네 것, 내 것이 없어요”

‘도봉구멍가게’주인 강유순씨

상망동이나 고현동 방향에서 부석사를 오갈 때면 부석면 감곡리 부근 도로 옆에 자그마한 상점이 보인다. 이런 곳에 가게가? 라는 의문과 영업은 하나? 라는 의문도 들지만 뚜렷이 큰 글씨로 쓰여 있는 ‘도봉구멍가게’(대표 강유순.60)라는 상호가 생존을 의미하듯 강열하다.

가게 겉에는 ‘묵 팝니다’라는 글자가 곳곳에 쓰여 있다. 양쪽에 놓인 평상사이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난로 주변에서 주민들이 담소를 나눈다. 물건들은 요즘 것들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스럽고 정감이 간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 진열된 과자, 양념, 음료, 생필품 등 다양하다.

▲고향 땅, 도봉마을로
서울에서 살다온 가게주인 강유순 대표는 감곡리 도봉마을이 고향이다. 그래서 가게이름도 ‘도봉구멍가게’로 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려고 무작정 올라간 서울생활이 참으로 힘들었어요. 처음엔 청량리 근처에서 촘촘히 있는 달방(보증금 없는 월세 방)에 살았어요. 반 상용직으로 거리청소를 하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일하다 쉴 곳이 없으니 파출소나 배려해주는 가게에서 쉬게 해줬어요. 커피 한 잔을 건네줄 때면 참으로 고마웠죠”

그녀는 옛날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움직임이 조금 불편해 보인다고 물으니, 어느 추운 겨울날에 거리청소를 하다 미끄러져 팔이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다쳤단다. 몸이 아프니 더욱 고향이 그리워 힘든 몸을 쉬고 싶어 내려왔다고.

“살만해졌지만 고향으로 올 때는 몸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도 고향에 오니 정말 좋았어요”

▲오아시스 같은 가게
50대 중반이 되면서 어릴 때 살던 고향이 그리웠던 그녀. 무언가를 남기기보다는 나누며 고향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30년 된 가게를 6년 전 인수했다. 2013년에는 잘 보이도록 간판도 달았다.

“동네에 유일한 가게이죠. 운영을 하면서 수익은 없어요. 그렇지만 이곳에는 마을사람들의 소소한 추억이 있고 역사가 되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없어질 테지만...” 이곳은 양조장이었던 곳이다. 옛날 막걸리를 주전자로, 말술로 팔던 때도 사람들이 많이 오갔단다. 술값을 달아놓고 받지도 못하거나 돈이 조금 생기면 한꺼번에 모아 받기도 했던 때다. 그때까지 포함하면 6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 당시 만든 60년 된 간장, 된장 씨앗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가게 벽이 진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가게로 들어오면 에어컨이 없이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훈기가 있어요. 여름에는 가게 밖 마루에 호박이나 가지가 나오면 내놓고 팔고 수박도 나눠먹고..., 시골인심이 좋아 네 것, 내 것이 없어요”

더운 날이면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가게이다. 목이 말라도 길 가로 가게를 찾기 어려워 가게상호를 보고 반갑게 들어오는 이들이 많다. 가게에서 나오는 물도 좋아 물병에 담아가기도 한다.

한창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는 마을사람에게 이 가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먼 시내까지 가는 번거로움도 없고 허기질 때 가까이에서 빵도 사고 잠시 목을 축일 막걸리 한 잔도 들이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땐 언제든지 이곳을 들른다.

“가게에는 나도 쓰고 만약을 대비한 상비약을 갖춰놓기 때문에 농사를 짓다 다치거나 손을 베면 응급처치를 하려고 들어와요. 타박상을 입는 경우에는 잠시 쉬는 장소가 되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는 그녀는 얼마 전 가게 인근 주택에 불이나 바로 119에 신고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연락했다고.

“소화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르신들이 놀라 대처능력이 부족하니 큰 불이 나기 전에 나라도 가서 끌 수 있잖아요. 마을사람들과 서로 돕고 살아가야죠”

가게 문이 열리고 “묵 있어요?”라며 묻는다. “명절 전에 있어요. 그때 오시면 되요”라고 주인이 답한다.

“하는 데까지 묵도 쒀서 팔고 동네채소도 팔고 마을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누며 살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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