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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면의 중심지 소천3리 ‘면소마을’우리마을탐방[180] 부석면 소천3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01.05 17:39
  • 호수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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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이벌지현-신라 인풍현-조선 삼부석면
소천(韶川)은 정옥의 호 우천(牛川)에서 유래

 

소천3리 마을전경

부석면 소천3리의 위치
부석의 관문인 거까뭇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산줄기가 산성처럼 소천리를 감싸 안고 있다.
면소재지는 부석초등학교가 있는 소천2리와 면사무소 주변의 소천3리 그리고 낙하암천 남쪽에 있는 소천4리 등 3개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심 마을이 소천3리이다.지난 18일 소천3리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김창동 이장, 이정식 노인회장, 장필희 부회장, 엄인자 전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소천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옛 부석면 사무소

고대(먼 옛날)의 부석
부석은 의상(義相)이 부석사를 창건한 676년 그 이전(삼국시대, 5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이벌지현’이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을 가진 고을이었다. 삼국사기에 보면 「본래 고구려의 이벌지현(伊伐支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인풍현(隣豊縣)으로 고쳐 급산군(급山郡, 순흥의 옛이름)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고 기록했다. 고려 때 부석은 흥주(興州)-순정(順政)의 속현으로 내려오다가 고려 말 순흥부(順興府) 인풍현이 됐다.

조선의 삼부석면, 일제 때 부석면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13년) 순흥부가 순흥도호부로 승격됐다. 1600-1700 무렵 부(府)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고려 때 인풍현에 속해 있던 단산 지역은 일부석면, 용암·감곡 지역은 이부석면, 부석사·소천·임곡·노곡 지역은 삼부석면으로 정비했다.

이 때 삼부석면에는 임곡(숲실)·대율곡(한밤실)·방동(부석사 방골), 독유동(獨遊洞.면소인근)·사문단(사그랭이)·호문단(노곡)·마흘천(남대리)·의풍 등 8개 마을이 있었는데 ‘독유동’이 현 면소재지 마을이다. 조선 말 1896년(고종3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삼부석면은 봉양면(鳳陽面)으로, 이부석면은 용암면으로, 일부석면은 단산면으로 개편됐다. 이 무렵 독유동(면사무소 지역)은 하사문리에 편입된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순흥군·풍기군·영천군이 영주군으로 합쳐지고, 순흥군의 봉양면, 용암면, 도강면(도탄, 보계)이 ‘부석면’으로 통폐합됐다.

이 때 북지리 일부, 두들마, 봉래동, 상사문리, 하사문리를 합쳐 ‘소천리(韶川里)’라 칭했다. 해방 후 소천리를 1,2,3리로, 1950-60년대 다시 1-6리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천 정옥의 묘

소천(韶川)은 우천(牛川)에서 유래
예전에 원근지역 사람들이 부석장 갈 때 “소천장 간다”라고 했다. 이는 당시 이곳 이름이 소천으로 널리 통용됐기 때문이다. 그럼 “소천이란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가 궁금하다. 부석면장을 지낸 홍종호(89,洪鍾鎬,제19대면장,1979-1982) 어르신은 “소천이란 지명은 조선 숙종-영조 때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소천 출신 정옥(鄭玉.1694-1760)의 호 우천(牛川)에서 유래됐다”면서 “우천은 워낙 학식과 덕망이 두드러져 지역민들의 우상(偶像)이 된 인물이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우천(牛川)의 소 우(牛)자에서 ‘소’자를 따고, 내 천(川)자에서 ‘천’자를 따 ‘소천’이라는 한글식 이름을 사용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이곳 선비들이 모여, 지역의 상징인 봉황산을 지명에 반영하자는 합의에 따라 ‘봉황은 풍류를 좋아한다’에 착안하여 ‘풍류이름 소(韶)’자를 한글 ‘소’자에 덮어씌워 소천(韶川)이란 한자이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소천 출신 큰선비 정옥(鄭玉) 
정옥은 청주인으로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의 5대손이다. 정옥이 쓴 우천집과 정종로가 지은 행장(行狀)에 보면 「정옥은 1694년 영천(옛영주) 소천(韶川)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사마시에, 34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지내고, 35세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영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41세에 황해도사가 됐다. 56세 소수서원의 동주(洞主,원장)가 되어 주서(朱書),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을 강론하다. 60세 통정대부가 되다. 66세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1760년 임소에서 졸하다」라고 적었다. 소천1리 김한진(79) 씨는 “정 감사는 단양 선영에 장사지냈으나 충주댐 수몰(1980)로 고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두들마 뒷산으로 이장했다”며 “당시 홍종호 부석면장 등 지역 유지들이 정 감사의 묘를 부석으로 이장을 적극 추진했었다”고 말했다.

부석면 소재지의 성립
조선 말(1896년) 삼부석면이 봉양면으로 개편되면서 면소재지는 임곡(숲실)에 있었다.

일제 초 1914년 조선총독부가 부석면소재지를 소천리에 두기로 함에 따라 1915-1920 무렵 장윤규(張潤奎)를 초대면장으로 부석면이 출범했다. 1922년 부석공립보통학교 개교, 경찰주재소 설치, 금융조합 개설 등으로 면소재지가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천수(86) 면노인회장은 “일제 초에는 이곳에 마을이 없었으나 면소와 학교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919년 소천장이 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급속도로 큰 마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김창동(56) 이장은 “소천3리는 면소재지가 있는 소천리의 중심마을로 현재 150호에 400여명이 산다”면서 “예전에 부석장이 처음 설 당시 면사무소 앞에서 장이 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소천장이 열리던 곳

소백산간 3도의 거점 소천장
영주의 5일장은 1914년 순흥장을 시작으로 소천장은 1919년부터 서기 시작됐다. 이정식(76) 노인회장은 “당시 소천장은 부석면 인근 단산면, 봉화 물야면, 충북 영춘면, 강원 하동면 등 3개도 산간마을 사람들이 부석장을 생활권으로 삶을 꾸렸다”면서 “소천장에는 산촌의 생산물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이현식(74) 노인회총무는 “당시 보부상들이 바지게에 물건을 지고 울진에서 십이령을 넘어  소천장까지 왔다 가곤 했다”면서 “그 때 면소 앞을 중심으로 장이 섰고, 개울가에는 소전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흰 바지저고리에 갓 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부석은 ‘백두산’
김옥선(81) 할머니는 “부석은 온 천지가 백두산”이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여쭈니, “부석에는 사과가 많아 사과꽃이 피는 봄에는 산천이 모두 ‘백두산 같이 하얗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부석장터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사과탑에는 「새천년의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모아 오천 면민의 행복을 기원하며, 20세기 후반 이 지역에 부(富)를 심어준 사과를 기려 이탑을 세웁니다. 2000년 3월」이라고 새겨져 있다.

임종인(75) 씨는 “소천3리 사람 중 대부분(8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100% 사과농사를 짓는다”며 “집은 장터(소천3리)에 있지만 농장은 사그랭이, 임곡리, 북지리 등에 있다. 사과를 시작한 후 부자마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천3리 사람들
소천3리부녀회
김창동 이장
이정식 노인회장
장필희 노인회부회장
이현식 노인회총무
이천수 부석면노인회장
김옥선 할머니
양분심 할머니
임종인 씨
주명화 전 부석면부녀회장
엄인자 전 부녀회장

소천3리 사람들
소천3리 경로당은 낙하암천변 골목 안에 있다. 2008년 12월 31일 준공된 이 경로당은 부지 마련에서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사연이 많았다고 한다.

이천수 면노인회장은 “소천3리는 주택 밀집지역으로 경로당 부지마련이 쉽지 않았다. 이 때 발 벗고 나서서 앞장 선 사람이 유만수(69.현 발전협회장)·엄인자(전 부녀회장) 부부였다”며 “지역주민과 출향인들이 마음을 모아 부지 기금을 마련하고, 또 건축비를 모금하여 숙원이던 경로당을 완공하게 됐다. 지금도 유 회장의 노고에 모두들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필희(75) 노인회부회장은 “유만수 회장님과 사모님 덕분에 노인들이 호강하고 산다”며 “또 이정식 회장님과 사모님(주명화 전 면부녀회장)께서는 경로당 지원뿐만 아니라 면 전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원과 봉사를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양분심(79) 할머니는 “우리 경로당은 겨울에는 따뜻한 안방, 여름에는 무더위 쉼터로 참 행복하다”며 “특히 12월부터 3월까지 4개월간은 모두 한집식구처럼 모듬살이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천3리 마을탐방에 적극 협력해 주신 김창동 이장님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부석면의 근대사를 고증해 주신 홍종호 전 면장님, 배동명 소천2리 전 노인회장님, 김한진 물구지 회장님, 서석원 성균관유도회경북본부 부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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