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20년간 장수사진 무료 촬영한 최윤식 씨

어머니 유지 받들어 부부가 함께 오지마을서 촬영
‘무료’ 사진 불구, 의심의 눈초리 한때 갈등 겪기도

‘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멋진 칠순잔치를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갑작스런 사고로 칠순잔치를 하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그 돈을 쓰기로 결정하고, 살아생전 지혜롭고 이웃에게 보시를 많이 하셨던 어머니가 좋아하실 일이 무엇인지 아내와 의논했다.’
20년 동안 아내 구영옥씨와 함께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촬영한 최윤식씨의 이야기이다. “1998년부터 시작했으니 어르신들 장수사진을 촬영한지도 20년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영정사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괜찮은데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고민을 했지요. 그때부터 ‘장수사진’이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오지마을 일수록 사진촬영 날은 마을잔치 날

최씨와 그의 아내는 사진관이 없고 여러모로 여건이 불편한 오지마을 위주로 찾아다니며 장수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내는 어르신들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며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고 남편은 사진을 촬영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은 그 마을 이장과 함께 집으로 찾아가 사진을 촬영했고 눈을 감은 채 사진이 나온 어르신은 다시 마을로 찾아가 다시금 사진을 촬영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지마을일수록 사진 촬영하는 날이 그 마을 잔칫날이 되기도 했다. 마을로 찾아가 촬영을 하고, 현상을 하고, 액자에 담아 드리기까지 모든 것이 무료다.

어떤 날은, 몸이 많이 편찮으셨던 어르신의 장수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그 마을을 찾아갔을 때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주민등록증에 있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했다. 모든 것이 무료임을 마을을 찾아가기 전에 충분히 설명을 해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내가 무슨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본인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고민도 많이 했단다.

“아무생각 말고 그냥 하자. 남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며 봉사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나를 수양하는 것이고 나를 위한 일이다라고 생각해야 해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기분 좋은 것이니까요”

처음 장수 사진을 촬영하며 1만 명까지는 헤아려봤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무 의미 없는 일인걸 알게 되었으며 그때부터는 그저 촬영만 열심히 했다. 오랫동안 봉사를 하며 그 돈을 다 어떻게 대느냐고 걱정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뜻을 세우면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철도기관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최씨는 현재 철도운전주식회사 총괄팀장으로 있다. “퇴직을 하고도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한 일이지요. 장수 사진 촬영도 계속해서 유지 할 수 있고, 일을 하며 봉사활동도 하니 더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촬영, 어르신의 인생을 담아

문화원에서 3년간 사진 강의도 했으며 지금은 SNS활동도 하고 있다. 사진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사진촬영을 취미생활로 했으며 대학시절에는 같은 과 친구들의 졸업사진과 교수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취미가 특기가 되고 일이 된 것이지요.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요즘은 마을을 찾아가지 않아도 먼저 연락이 오고 있다. 그럴 때면 작은 규모라도 찾아가서 장수사진을 촬영해주고 있다. 지난 11월 22일에는 봉화에 있는 노인회관에 찾아가 어르신 90여명의 장수 사진을 촬영했다.

“늘 같이 다니던 아내가 손자를 봐주러 서울에 가 있어서 제자와 함께 다녀왔어요. 어르신들이 옛날하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더 젊었을 때 찍어둘걸, 눈을 크게 해 달라, 주름을 없애 달라, 웃으며 말씀도 하시고 기분 좋게 사진을 찍지요”

최씨는 가족에게 사진을 전달하며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어르신이 돌아가셔도 사진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해요. 사진 한 장에 어르신의 일생이 담겨있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손자손녀들에게도 보여주고 이야기 하며 가족애를 다지는 것이 참 교육 아니겠어요”

최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단 한장의 장수사진이라도 더 찍겠다는 각오이다.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 제목처럼 뜻을 세우고 길을 나서니 길이 저절로 보이더라고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 길을 걸어가야지요.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행적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살아온 오랜 세월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며들지요”라고 말하는 최씨의 얼굴에도 그의 아름다운 행적이 오롯이 스며있다.

김미경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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