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서천직강공사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의장 (1962.3.31.)

5.16 사태로 새 정부가 들어선지 두 달도 채 못 되는 1961년 7월 11일 새벽. 영주는 300mm가 넘는 폭우로 시내 전역이 미증유의 물난리를 겪는다. 주택 1,500여동이 침수되거나 물에 잠겨 지붕만 둥둥 떠다니는 큰 수해를 당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장군은 수해 이틀 만인 7월 13일, 전격적으로 영주를 방문한다. 아직 수위가 덜 빠져 질퍽질퍽한 수해 현장을 찾아 일일이 수재민을 위로했다.

당시 박 의장이 영주로 떠나던 날 새벽,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5천년을 하루같이 시달려온 이 피곤한 민족이 모처럼 일어서려는 비장한 마당에 다시금 하늘이 시련을 내렸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하고 이 고비를 싸워서 넘겨야 한다. 시련은 내일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조금도 낙망하지 아니하고 실의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비장한 각오로 영주행 열차에 올랐다고 한다.

경북선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6.11.9.)

카키색 군복, 각진 군모, 그리고 까만 ‘라이방’을 쓴 작지만 다부진 사람, 박정희 소장을 가까이서 봤던 한 지역인사는 “눈빛은 형형했고, 음성은 쨍쨍했으며, 발걸음은 씩씩했다”고 표현하면서 “자립정신을 발휘해 복구사업에 모든 힘을 다 바쳐 달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첫 영주 방문이었다.

박정희는 2주 뒤인 7월 25일, 군용기를 타고 다시 영주를 찾은 것으로 돼있다. 천막촌을 찾아 수재민을 위로하고 위문품을 전달했다.

짚차를 타고 폐허가 된 시가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지시봉으로 덕산(서구대 뒷산) 쪽을 가리키고는, “저길 자르지”하며 항구적인 수해 대책으로 산허리를 잘라 시내를 관통하고 있던 하천의 흐름을 시가지 밖으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당시로는 절대 쉬운 공사가 아니었다. 이른바 ‘서천직강(直江)공사’라는 대역사(大役事)이다. 곧 바로 육군 공병부대와 해병 제1상륙사단을 지휘하는 영주수해지구사령관으로 이성가 장군을 투입시켰다.

특유의 군인정신으로 시가지와 농지들이 복구되었고, 발 빠르게 향교골(행지골)과 지천바닥에 이재민의 주택이 지어졌다. 군민들은 매일같이 제민루 산에 올라 직강공사 현장을 지켜보았다. 밤낮 없는 공사가 속속 성과를 내고 마무리되어 갔다.

그렇게 8개월 동안 연인원 5만 여명을 투입한 대역사는 1962년 3월 31일을 기해 당시 공설운동장(현 영주동 주공연립주택)에서 역사적인 준공식을 갖게 된다. 새로운 서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세 번째로 영주를 방문한 박정희는 이설된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제민루(현 삼판서고택) 뒤편 언덕에 전나무 한그루를 기념식수 한다.

지금 삼판서고택 뒤편에 있는 전나무이다. 이 서천직강공사 준공 이후 소위 신영주라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영주의 휴천동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10개월 만에 탄생시킨 새정부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네 번째 영주 방문은 예천과 영주 간 약 30㎞를 연결하는 경북선의 개통식에서였다. 이때는 대통령 신분이었다. 그는 “수송난은 빠른 경제성장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교통로 확충을 더욱 다독였다.

이미 안동으로 운행된 적이 있었던 구 노선을 바꾸어, 점촌-예천-영주를 연결한 경북선은 약 5년 가까운 공사 끝에 1966년 11월 9일 개통식을 갖게 된다.

이로써 영주는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십(十)자로 교차되는 교통도시가 되어 물류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영주의 역사(歷史)가 바뀌는 시점이었다. 후에도 박정희는 다시 영주를 방문한 적은 있다.

1971년 총선 당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처럼 영주와의 인연이 남달랐던 박정희가 1917년 11월 14일로 탄신 100주년을 맡게 된다.

아직도 박정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기념사진전시회, 도록 제작, 기념메달, 휘호집 발간 등등의 기념사업이 행해진다. 기념우표도 구미시가 추진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중의 하나인데 결국 사업이 취소되고 말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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