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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프리즘[61] 빨락꾼권서각(시인·문학박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11.06 18:00
  • 호수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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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불행은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일 것이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베 정권의 수상한 행보 때문이다.

한반도 침략의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일본군이 남의 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도록 개헌을 하려하고 있다. 그런 아베 정권을 보면서 100년 전 일본이 한반도에서 저지른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기류 속에서 한반도는 열강들의 침략의 대상이었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를 강점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그들의 명분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근대화였다. 국가를 통치할 능력이 없는 우리민족을 위해서 대신 통치해 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철도를 건설하고 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를 만들었다. 동양척식회사를 만들어 농민들의 농토를 빼앗아 농민들을 소작인으로 만들었다.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유랑민이 되거나 만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떠났다.

지금도 일제강점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와서 철도, 항만, 도로, 공장 등을 만들어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과 친일파 후손들의 주장이다.

물론 일본이 산업의 기반시설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근대화 했을 것이다. 우리민족은 강하고 우수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그 시절 우리 농민들은 철도, 신작로, 항만 공사에 부역을 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의 고통스런 삶은 부인하지 못할 역사다. 그렇게 해서 건설된 철도, 신작로, 항만은 한반도 자산이 일본으로 실려 가는 통로가 되었다. 그 길들은 우리를 위한 길이 아니라 경제수탈의 통로였다.

우리 민중이 강제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릴 때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신문명을 누리며 산 동포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본인 밑에서 동포를 수탈하는 일을 도운 이른바 친일파들이다. 그 시절 모두가 친일파는 아니었다.

처음엔 의병이 있었고, 한일합방 이후에는 독립군이 있었다. 대부분 독립투사들은 만주로 가고 남은 사람들은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건 나날들이었다.

의병, 혹은 독립군이라 불리던 사람들을 일본은 비적, 역도, 반란군이라 했다. 독립투사들은 집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몰래 활동했다. 반란군은 민간에서 와전되어 빨락꾼으로 불리었다. 그래서 집에 잘 있지 않고 밖으로 나다니는 사람을 어른들은 빨락꾼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동포인 밀정, 앞잡이, 친일파의 밀고로 일경에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친일파란 참으로 자기 안위만 위하는 자들이었다. 그 친일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고 일본도 제대로 사죄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아직도 친일을 미화하고 일본은 다시 남의 나라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박은식은 우리 역사를 한국통사(韓國痛史)라 했다. 한국의 아픈 역사라는 뜻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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