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좋은 하루 되세요.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들으면서도 뭔가 개운하지 못한 말이라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이 문장을 주어 서술어를 갖추어 다시 쓰면 ‘당신은 좋은 하루가 되세요’가 될 것이다. 당신이 주어니까 당신이 좋은 하루가 되라는 말이다.

사람에게 하루가 되라는 요구다. 사람이 하루가 될 수 없는 일이기에 의미에 모순이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비문(非文), 즉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다. 어법에 맞게 표현 하려면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또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가 될 것이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겁게 여행하세요’로 바뀌어야 한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제주항공에서는 국립국어원의 자문을 받아 기내방송 언어를 어법에 맞게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틀린 우리말과 외래어 간판이 무성한 것은 우리말보다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려는 항공사가 있다니 매우 반가운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귀에 거슬리는 우리말이 매우 많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갈 차례가 되면 담당 간호사가 ‘00님, 이쪽으로 들어가실게요’ 하면서 안내한다. 미용실에서도 미용사가 옷을 벗는 것을 도우면서 ‘상의 벗으실게요’ 한다.

뭔가 불편하다. 왜 그럴까? 이 또한 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ㄹ게요’는 말하는 사람의 의지가 담긴 서술어다.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뜻의 말이다. ‘방에 들어갈게요’, ‘옷 벗을게요’, 커피 마실게요‘ 등의,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쓰는 말이다.

남에게 들어가는 동작을 시키면서 ‘들어가실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말을 정중하게 표현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어법에 맞지 않는다. 그냥 ’들어가세요‘라고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지나친 친절이 오히려 비문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거리의 간판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 특이하게 생각되었다. 간판은 거기가 무엇을 하는 곳이란 표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광고보다는 실질을 중요시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간판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경쟁적이다. 그것도 외래어로 된 것과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에선 당연하게 여겼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도 모르는 곳에서 전화가 걸려와 받으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다니 당황스럽다.

간판도 과잉이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도 과잉친절이다. 언어는 진실해야 하고 어법에 맞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과잉 경쟁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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