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시인, 본지 논설위원)

명예퇴임을 하고 다시 기간제로 다시 학교에 나가서 교육활동을 도와주던 분이 이렇게 토로한다.

지금 학교 현장은 인성교육도 없고 그저 정부 기관의 여러 가지 정책 평가기관으로만 존재한다면서 교수-학습의 질적 향상보다 기관평가 같은 데 주력해서 학교업무가 돌아간다고 했다.

학교경영이 언론매체에 홍보되어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게 경영자의 평가자료가 되는 현상이 심각하다고도 했다.

교과 내용은 학원에서 배우고, 기타 과목은 집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선 그저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을 뿐이라는 답답함의 표현이었다.

도시든 시골이든 재학생 중엔 ‘귀한 집 자제’들이 태반이고, 국영수와 미술, 피아노, 운동은 물론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까지 학원에서 선행을 하고 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한계를 모르는 사교육의 위세에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초등교사들 중에 오히려 당당한 분들이 있다.

“요즘엔 외둥이도 많고, 아이들이 대부분 자기중심적이에요. 부모님들이 말로야 자녀들을 잘 가르치시죠. 하지만 다들 애지중지 귀한 자녀라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성교육을 가정에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학원은 경쟁에서 이기려고 찾아가는 곳인데, 무슨 공동체 교육이에요. 함께 어우러져 사는 걸 배울 수 있는 곳은 이제 학교밖에 없어요. 교사들이 학부모 민원을 겁내지 말고 아이들한테 공동체 삶을 가르쳐야 해요. 그런 면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봐요.”

학습적인 측면에서 공교육이 사교육에 빼앗긴 위상을 되찾을 날은 요원해 보이지만, 날로 중요해지는 인성교육만큼은 학원이 학교를 대체할 수 없으리라는 교사의 말에 수긍이 간다. 교육부가 몇 년 전에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당시 국회의장이 법안을 발의하고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켰으니, 인성을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무모한 실험의 책임은 교육부에게로 돌아갔다.

국영수 위주에서 인성 중심으로 교육의 문화와 풍토를 바꿔보겠다는 진정성까지 굳이 외면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법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로 중차대한 인성교육을 학교와 교사가 아닌 전문 기관과 강사한테 위탁한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교육부는 전문 기관을 지정해 인성교육 프로그램과 교육과정 인증 업무를 위탁하기로 했다.

2013년부터 보수 성향 단체들이 꾸린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인실련)이 독점적인 인증권을 행사하고 있다가 올해부터 다른 곳에서 관장을 하나보다.

물론 교육부가 인실련에 인증권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교육부가 대학, 출연 연구기관, 공익법인 등을 인성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하기로 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사교육에 밀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교육의 본질’마저 인성 전문 기관과 강사들의 ‘밥벌이’로 떼어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을 보면 인성의 핵심 가치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을 열거했다.

내가 불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우선시해야 하는 덕목들이다. 말이야 얼마나 그럴듯한가. 그 덕목들은 외부에서 수혈된 정형화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길러지는 됨됨이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인성교육의 외주화’가 정착되면, 이해집단의 생리상 나중에 학교가 제 역할을 하고 싶어도 되찾아오기 힘들 게 뻔하다.

어차피 인성교육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거두기 어려우므로, 학교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외주화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요즘은 취학 전 유아교육에서부터 현장체험학습이 대유행이다. 시장놀이, 병원놀이, 은행놀이, 농사체험, 개펄체험까지 이루어진다고 하니 초등 중등 고등을 가리지 않고 해외체험까지 발전(?)했다.

얼마전부터 SNS나 뉴스보도를 통해 전국 곳곳에서 믿기어려운 학원폭력이 법정으로까지 옮겨가 논란이 일고 있다. 청소년보호법까지 손볼 기세다.

인성교육의 부재를 법률을 뜯어고친다고 달라질지도 의문이거니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백지화시킨 새 정부의 교원정책만으로도 공교육기관에서의 인성교육 부재가 개선될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대학입시제도에 따라 공교육기관의 교수-학습이 달라지는 현실 앞에서 ‘남에게 폐끼치지 않기’를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새 정부는 일제고사를 완전폐지하고, 자사고 특목고도 없애겠다고 한다.

듣기로는 학생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의혹도 있다는데 무엇이 올바른 평가일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인성마저 뒷전일 정도로 절박한 경쟁교육 체제를 수술하고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맺는 학교 현장에서 사람됨을 배우고 가르칠 여유를 주는 방안이나 마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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