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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가 가르쳐 준 명당 ‘노루고개(노현)’우리마을탐방[170] 휴천3동 ‘노루고개’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10.23 17:15
  • 호수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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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고개 마을 전경

훌륭한 인물 태어나고 재물이 모이는 명당
마을이 화합하고 집집마다 금실 좋은 마을

휴천3동 노루고개 가는 길
노루고개는 휴천1동 구서원(舊書院) 앞산 너머에 있다. 남산육교 사거리에서 농협파머스마켓 방향으로 간다. 수청교를 지나 수청정미소 앞에서 좌회전한다. 철도건널목을 건너 수청휴정(水靑休亭)에서 우회전한다.

노루고개 방향으로 1km 쯤 올라가면 10시 방향으로 보이는 마을이 ‘노루고개’다. 지난 1일 노루고개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박홍식 통장, 이번 노인회장, 김준동 노인회부회장, 김정한 씨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노루고개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마을의 상징 동수나무

역사 속의 노루고개
노루고개는 태종 14년(1414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永川郡, 영주의 옛이름) 남면에 속했다.

조선 중기(1700년 전후) 무렵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어화곡리(於火谷里) 전단방(箭丹坊)에 속했다가 1800년경 면리(面里)로 개편할 때 어화곡면 전단리에 속했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어화면(於火面) 조암동(槽巖洞)에 편입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을 개편 때 영주군 이산면 조암동이 되었다가 1980년 영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영주시 휴천3동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홍식(53) 통장은 “노루고개는 조선 중기 때는 어화곡면에, 조선말에는 어화면에, 일제 때는 이산면에 속했다가 지금은 영주시에 편입됐다”면서 “웃전단, 아랫전단, 노루고개 등 3개 부락이 휴천3동 5통”이라고 말했다.

1960년(단기4293) 화전놀이

지명 유래
예전에 남간재 남쪽 구서원(舊書院) 자리에 이산서원이 있었다. 유생들이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홀연히 노루 두 마리가 나타나 선비들을 향해 ‘나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고는 앞산 고개 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선비가 노루가 가르쳐 준 고개 너머에 가보니 사람 살기 딱 좋은 명당 터가 있었다. 이 선비는 나중에 장가들어 여기에 터를 잡고 살면서 ‘노루가 가르쳐준 땅’이라 하여 ‘노루고개’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또 영주시사에 보면 「이곳 지형이 노루가 뛰어가는 형상이라 하여 ‘노루고개’ 또는 장현이라고 적었다. 김정한(70) 씨는 “이 마을 딸들이 시집가면 ‘장현댁(장峴宅)’이라 불렀다”며 “노루고개를 한자로 쓰면 노루 장(장)자에 고개 현(峴)자를 써 ‘장현’이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마을 사람들은 ‘조암 노현’이란 지명을 쓰고 있다. 조암(槽巖)이란 전계(箭溪.윗전단에서 아랫전단으로 흐르는 시내) 바닥을 가로질러 실금(보막이) 구실을 하는 바윗돌이 구유(마소 먹이통)를 닮았다 하여 구유 조(槽)자에 바위 암(巖)자를 써 조암동(槽巖洞)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김준동(69) 노인회부회장은 “노루고개를 한자로 쓰면 장현(장峴)이 맞다. 그런데 언제부터 누군가 ‘노현(魯峴)’이라 쓰고 있어 이는 잘못된 기록으로 본다”며 “노현은 ‘한글(노루 노)과 한자(고개 峴)를 조합한 지명”이라고 말했다.

조암 노현 경로당

노루가 가르쳐 준 명당
노루고개는 노루가 가르쳐 준 명당이다. 노루는 금실 좋은 동물이기에 ‘노루마을’은 부부(夫婦) 금실(琴瑟)이 좋기로 특별하다고 한다.

이 마을 김정한 씨가 일러 준 명당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노(老)스님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앞에 우뚝 솟은 두 산봉우리를 보고는 ‘큰 인물이 태어날 명당’이라 했다.

또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키(箕.곡식 까부는 연장) 모양이다. 키의 안쪽 알곡이 모이는 자리에 마을이 터를 잡았으니, 해마다 풍년 들고 날로 재물이 싸이니 집집마다 부자 될 명당’이라 말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노루고개에 가서 처음 만난분이 권영기(73)·안옥현(68)씨 부부다. 금실 좋은 부부는 고구마를 캐다가 새참으로 만두를 먹으려 할 때 기자가 길을 물었다. 두 분이 한사코 권해 만두를 함께 먹게 됐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예전에 길 가던 사람을 불러 논두렁 새참을 나누어 먹던 농촌 미풍(美風)이 떠올랐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 설 때 (안옥현) 부인께서 “지금 노루고개는 노루는 안보여도 고라니는 많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준공사진

마을의 개척과 형성
순흥안씨 역사에 보면 「순흥안씨 일족이 노루고개에 세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금성대군 변란(1457년) 때 일족이 이곳에 숨어 살면서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가흥리 구수동(龜首洞. 한절마)에 정착한 청도김씨 김난상(金鸞祥.1507~1571)의 후손 일족이 1700년경 이곳에 입향하여 세거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 후 안동권씨, 의령여씨, 경주최씨, 경주석씨, 예천임씨 등 여러 성씨들이 1800년대 중·후반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했다.

이 마을 김정한 씨는 “안동김의 경우 저의 조부(禮圭, 25세,1926-1968, 참봉) 대에서 6.25 후 전단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셨다”고 말했다.

까치구멍집

까치구멍집
이숙희(88) 할머니집은 ㅁ자형 까치구멍집이다. 16살 때 봉현 하촌에서 노루고개로 시집와 72년 동안 이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시조부, 시부모, 시삼촌 모두 13식구가 한 집에 살았는데 당시는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며 “방에다 베틀 2대를 놓고 시어미니와 베를 짜 살림에 보탰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또 “7남매(4남3녀)를 두었는데 모두 도시로 나가 잘 살고 있다”며 “추석에 다 모이면 까치구멍집이 시끌벅적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두월 해맬서 시집왔다는 권노미(88) 할머니는 “(일제 때) 당시 처녀공출(정신대) 피하려고 16살에 시집왔었다”며 “그 때는 모든 걸 일제가 다 빼앗아가고 송구죽, 나물죽으로 연명했었다. 그 무렵 집집마다 길쌈을 했는데 밤낮으로 일해서 3일에 1필씩 짰다”고 말했다.

노루고개 가는길

가깝고도 먼 영주
동수나무 근처에서 들깨를 추수하시는 석균남(80) 할머니를 만났다. “노루고개 가는 길이 어디냐?”고 여쭈니, “산 너머가 영주인데 저 멀리로 빙 돌아가야 하니, 가깝고도 먼 영주”라고 말했다. 김준동 부회장은 “노루고개는 바다의 섬마을 같다”며 “고개만 넘으면 구서원인데 ‘파머스마켓’까지 돌아서 가야하니 머나먼 영주”라고 말했다.

정영진(68) 반장은 “시(市)와 협의하여 대영중 쪽으로 바로 넘어가는 신설도로 건설 계획이 토지보상까지 끝나고 시공을 기다리는 단계”라며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예정보다 앞당겨 준공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루고개 사람들

노루고개 사람들
마을회관 벽에 회관 준공식 사진이 있다. 사진 중심에 김주영 전 시장과 김정한 씨가 서 있다. 이번(75) 노인회장은 “마을의 숙원이던 경로당이 2014년 3월 준공됐다”며 “당시 김정한 씨를 회관건립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시(市)예산 1억 2천만원을 지원받아 자부담 없이 건립하게 됐다. 

당시 김 위원장님께서 설계에서 시공-감독-준공까지 수고가 많으셨다”고 말했다. 김순원(73) 씨는 “마을회관이 건립되어 어르신들의 주 생활공간이 됐다”면서 “특히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끼리 서로서로 보살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원희(67) 노인회총무는 “선대(先代)께서 말씀하시기를 ‘노루고개는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명당’이라 하셨다”며 “예전 일은 알 수 없으나 현대교육이 시작된 이후 각계각층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라고 말했다.

'만종'같은 그림

이날 김준동 부회장이 60년 전 ‘화전놀이’ 사진을 가지고 왔다. 당시 한복 차림의 마을사람들이 국수를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화기애애한 마을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정연하(80) 할머니는 “영주 새마을금고가 우리 마을에서 시작됐다”면서 “당시 집집마다 쌀 1되씩 모아 구판장을 만들었고, 구판장이 노현새마을금고로 발전하더니 나중에 영주시내로 나가 새마을금고를 출범시켰다”고 말했다.

김준동 부회장은 “우리 마을 석수호 어르신이 노현새마을금고 창설자”라 했고, 주정자(85) 할머니는 “새마을금고 탄생의 주역은 지금 80대 노루고개 어르신들”이라고 말했다. 까치구멍집을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석수호(83)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뒷산을 가리키며 “예전에 수백년 수령의 소나무가 빽빽했는데 보릿고개 때 송구(소나무 속껍질) 벗겨 먹느라고 모두 사라졌다. 그 뒤 어린 소나무가 자라 이렇게 컸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휴천3동 노루고개 사람들>

박홍식 통장
이번 노인회장
김준동 노인회부회장
김정한 씨
권노미 할머니
정연하 할머니
석균남 할머니
김순원 씨
정영진 반장
조원희 씨
권영기 씨
이숙희 할머니
석수호 어르신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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