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서초당, 정운경의 묘, 만취당 답사

“선비의 고장 영주 이해에 큰 도움”

영주문화유산보존회(회장 김미경)는 지난 14일 ‘청소년과 함께, 영주 선비를 찾아서’란 주제로 선비정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영주여고 학생 32명이 참가했다.

오전 10시 영주시민회관에 모여 출정식을 가진 후 이몽룡의 실존인물 성이성의 계서초당 답사,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 묘소 참배,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만취당 김개국 사당 참배, 우금촌 두암고택 및 만간암을 답사했다.

출정식에서 김미경 회장은 “오늘 우리는 영주가 낳은 훌륭한 선비들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선비정신의 참 의미를 깨닫고, 그 분들이 남기신 지혜와 총기를 이어받기 위해 나섰다”면서 “오늘 청소년들을 직접 지도해 주실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성이성의 계서초당
김태환 향토사연구소장=계서 성이성(成以性)은 1595년 임진왜란 중 이곳(신암리)에서 태어났다. 성 도령(13-16세)은 부친(성안의)이 남원부사를 지내던 시기인 1607년부터 3년여 동안 남원에서 살았다. 이 때 한 소녀와의 만남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춘향전이 창작되었다고 한다. 계서초당은 성이성이 말년에 이곳에 초당을 짓고 학문 증진과 후학 양성에 힘쓰던 곳이다. 그는 사후에 청백리에 올랐고, 부제학에 추증된 영주의 선비다. 역사탐방로를 따라 산등성이를 넘으면 성이성의 묘가 있고, 이산면 두월리에 아버지(성안의) 묘가 있다.

정도전의 시묘살이
정태주 전 대영고 교장=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삼판서고택에서 태어나 10대 중반 아버지(정운경.1304-1366)를 따라 개경으로 갔다.

정도전이 24살 때인 1366년 1월에 부친(정운경) 상을 당해 영주로 내려왔다. 1개월이 넘도록 묘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한 자나 되는 눈이 왔는데 이산면 신암리 선영 구내에만 한 점의 눈도 없으므로 그 자리에 장사지냈다.

그 해 12월에 또 모친(영천우씨)이 돌아가시니 전후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상 중에도 학문에 전념하는 열정을 보였는데 영남의 유생들이 배우러 와 잘 가르치고 등과시켜 좋은 벼슬에 오르게 했다. 시묘살이 하던 자리에 문천서당이 설립됐다.

나라를 구한 김개국
김치묵 전 남부초 교장=만취당 김개국(金蓋國.1548~1603)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영주의 선비다. 김개국은 형조·공조·예조정랑을 거쳐 강원도사, 충청도사, 옥천군수를 지냈다.

임진왜란 전투사에 보면 「1952년 5월 김개국을 수장으로 의병을 조직했다. 매복과 기습공격으로 일본군 죽령 진출을 막는 큰 전과를 올렸다」고 기록했다. 만취당은 김개국이 후학 양성을 위해 40세(1587) 때 건립한 정자다.

최원희·최윤희(영주여고2) 학생은 “오늘 ‘영주 선비를 찾아’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체험을 했다”며 “내가 살고 있는 영주가 왜 선비의 고장인지 알게 해 주신 영주문화유산보존회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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