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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霞)이 아름다운 마을 ‘우수골(愚谷)’우리마을탐방[168] 부석면 우곡리 ‘우수골’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10.02 14:48
  • 호수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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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미마을 전경

조선 초 호가 우수인 황한충이 학문하던 곳
바위와 절벽과 정자와 선비가 만든 하암동천

부석면 우수골 가는 길
우곡리(우수골)는 부석면사무소에서 의상로를 따라 남쪽으로 2km 지점에 있다. 당목 아래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더불어 사는 마을이다.

주변은 온통 낙하암천의 비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예전에 이 마을 선비들이 바위에 ‘하암동천(霞巖洞天)’이라 새기고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했다 한다.

지난 17일 오후 노을이 고운 우수골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김동준 이장, 배준식 노인회장, 최경진 전 이장, 서정희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우수골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우곡리 표석

역사 속의 우수골
우곡리 지역은 조선 초 1413년(태종13년)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에 속했다. 세조 3년(1457년) 금성대군 변란(정축지변)으로 순흥부가 폐부되자 풍기군에 속했다가 숙종 9년(1683년) 순흥부(順興府)로 회복됐다.

조선 중기 무렵(1700년경)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도강리(道講里) 우수방(愚수坊)이라 부르다가 영조 이후(1800년경) 면리(面里)로 개편하면서 도강면 우수동리가 됐다.

그 후 조선 말 1896년(고종 33년)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면서 도강면 우곡리(愚谷里)가 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군의 봉양면, 도강면, 용암면을 부석면으로 통합하면서 부석면 우곡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동준(55) 이장은 “우곡리는 우수골, 비기실, 명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며 “우수골은 예전에는 70여호가 사는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40여 호가 산다”고 말했다.

우수골 사람들

지명유래
순흥지(順興誌)에 우수골 유래가 나온다. 「조선 초 황한충(黃漢忠)이란 선비가 이 마을에 살았다. 그는 호가 우수이고 창원황씨 대상공파 12세손으로 단산면 병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496(연산2)년에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문장으로 명성이 대단했다.

그는 우계(愚溪) 가에 양성정(養性亭)이란 정자를 짓고 독서하며 뜻을 구했다. 그는 스스로 호를 우수(愚수, 어리석은 늙은이)라 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가 사는 마을을 우수동(愚수洞)이라 하였다.

또 황한충의 아들 황빈(黃彬)은 주세붕 군수가 소수서원(1543 창건)을 세울 때 벼 75석을 내어 도왔다. 주세붕은 기문에서 “그의 도타운 뜻은 주자(朱子)가 남강에 서원을 세울 때 물력으로 크게 도운 유윤적(劉允迪)에 비유할만하다”며 크게 칭송했다.

또 주세붕이 시를 지어보내기를 「지난해 부석사에서 함께 놀았기에(去年浮石共淸遊)/그대 집에 가득한 가을 풍광 생각하였네(仍想君家滿院秋)/중화당 아래 흘러가는 물(爲問中和堂下水)/그 근원 어느 날 잠시라도 멈추랴(源頭何日暫停休)」하였다.

14-자하대(紫霞臺)

낙화암(落花巖)의 전설
지금은 낙하암(落霞巖)이라 쓰지만 순흥지에는 낙화암(落花巖)이라고 나온다. 옛날 태수(太守)가 기생을 데리고 놀았는데 기생이 술에 취해 춤추다 떨어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이곳 선비들이 노을이 아름답다 하여 낙하암(落霞巖)이라 바꿔 불렀다.

이 낙화암에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세조2년(1457) 백촌 김문기(金文起.1399-1456)가 경상아사로 감사 남지(南智)와 함께 (영주) 순행할 때 부석사를 탐승한 후 당시 순흥군수 장령(掌令) 최상생(崔常生)이 낙화암에 초대하여 주연을 열었다」는 내용이 서거정의 고금소총에 나온다.

배준식(76) 노인회장은 “유서 깊은 낙화암이 일제 때 신작로 공사로 1차 훼손되고, 1980년대 확장포장공사로 원형을 잃고 일부만 남았다”며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형승(形勝)들이 잘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우곡 서낭당
효자다리

하암동천(霞巖洞天)
동천(洞天)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치가 좋은 선경(仙境)을 뜻하는데 하암동천은 ‘떨어지는 노을(霞)이 아름다운 마을’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송지향의 영주향토지에 보면 「선조(宣祖) 임금이 화원(畵員)을 우계(愚溪.낙하암천의 옛 이름)에 보내 산수(山水)를 그려다가 보았다」고 적었다.

근세 유학자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1867~1952)은 영주의 동쪽을 흐른다 하여 동계(東溪)라 하고, 선암(仙巖)에서 하암(霞巖)까지 동계구곡(東溪九谷)을 설정하여 경영했다. 구곡 중 5곡 능운대(凌雲臺.서낭당 동쪽 용두), 6곡 풍영대(風詠臺), 7곡 자하대(紫霞臺), 8곡 옥간대(玉澗臺)가 용두에서 낙하암 사이에 있다.

최경진(71) 전 이장은 “낙하암천 비경은 우수골에 집중되어 있다”며 “그 중에서도 마을에서 ‘용두’라고 부르는 능운대는 동계구곡의 으뜸 경관이고, ‘하암동천’‘원화수석(元化水石)’이란 글자가 새겨진 7곡 자하대는 신선(神仙)이 즐길만한 비경”이라고 말했다.

효자교의 전설
우수골에서 당목고개 넘어 100여m 가량 가다보면 ‘대웅사’라는 절 표지판이 보인다. 절집 앞 낙하암천에 최근 대웅사 스님이 놓은 돌다리가 있고, 그 위쪽 20여m 지점에 냉장고 크기만한 바윗돌 네댓개가 보이는데 이게 바로 ‘효자교’다.

예전에 우수골에 사는 홀아비가 밤마다 개울 건너 독지골에 사는 과부집을 다녀오곤 했다.

아침마다 아버지 바짓가랑이가 젖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가 겨울에도 발을 적시지 않고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드렸다는 이야기다.

이 마을 박영도(55) 씨는 “언제 이야긴지 알 수 없으나 어릴 적 효자교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예전에는 부석 갈 때는 효자교 건너 올라가다가 낙하암에서 다시 돌다리를 건너 소천으로 갔었다”고 말했다.

서원골

서원(書院)과 정자(亭子)
최경진 씨는 “당목 너머 왼쪽 골에 ‘서원’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의 서원’ 책에 보니 「우수동에 도고서원(陶고書院)이 있다. 1824년(순조24) 유림에서 창건하여 황한충, 민응기, 손흥경 권준신을 제향했다. 1868년 국령으로 훼철됐다」고 되어 있다.

우수동에는 정자가 많았다. 황한충이 글을 읽던 양성정(養性亭)과 그의 아들 황빈이 주세붕을 접빈했던 중화당(中和堂) 등이 있었다.

또 정산 김동진은 1890년 봄에 풍광 좋은 풍영대(風詠臺)에 벗들을 초대하여 계(契) 모임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배준식 회장은 “우수골은 바위와 절벽과 정자와 노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했다.

경주최씨 칙명

우수골 사람들
우곡리 버스승강장 바로 뒤에 있는 건물이 마을회관이다. 배준식 노인회장님의 주선으로 많은 분들이 회관에 모였다. 큰방에서 단체사진도 찍었다.

배 노인회장은 “마을회관은 2000년 마을 사람들과 출향인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했다”고 말했다. 김월락(64) 새마을 지도자는 “우리마을 농업은 사과를 중심으로 고추 등 밭작물을 주로 재배한다”며 “지난 6월 우박으로 사과, 고추 등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오랜 세월 함께 살아 온 서정희(88)·김옥희(85)·이영란(83)·안해윤(84) 할머니는 “배준식 노인회장님과 마을 지도자들이 노인복지를 위해 적극 지원해 주셔서 고맙다”면서 “김영순 부녀회장님과 유숙자 총무 그리고 청국장집 등에게 맛있는 밥과 반찬 대접을 받으니 ‘여기가 살기좋은마을 우수골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용두(능운대)

할머니들은 또 “예전에 토담집에 살 때 보리이삭 비벼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는데 박정희 대통령 당시 통일벼가 나와 쌀밥 먹고 살게 됐다”며 “지금은 천국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차숙(70) 씨는 “우수골 당집은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정월보름 서낭제, 5월 어버이날 행사, 여름에는 복날행사, 가을이면 단체관광 등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최경진 씨는 가보(증조부 칙명)를 가지고 왔다. 「勅命 崔世祿 陞 正三品 通正大夫 者, 光武六年十一月八日」이라고 적혀있다.

「임금의 명령, 최세록 정삼품 통정대부에 오르다. 1902년 11월 8일」이란 내용이다. 회관에서 나와 배준식 회장, 최경진 전 이장과 낙하암천 명승(形勝)을 둘러 봤다. 하암동천의 비경이 도로공사로 훼손되고, 무성한 잡초에 묻혀 보이지 않으니 아쉽다. 취재에 적극 협조해 주신 배 회장님과 최 전 이장님께 감사드린다.

낙하암(하암동천)

<부석면 우곡리 우수골 사람들>

김동준 이장
배준식 노인회장
김월락 새마을지도자
박영도 반장
최경진 전 이장
서정희 할머니
김옥희 할머니
이영란 할머니
안해윤(안악) 할머니
유차숙 씨
유숙자 부녀회 총무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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