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무량수(無量壽)는 한없이 긴 생명, 즉 영생(永生)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無量數)를 찾아내기 위한 인간의 노력도 끝없이 계속되었다. 아르키메데스는 하늘과 땅을 모래알로 모두 채운 수 10을 51번 곱한 1051이라는 큰 수를 생각해 냈다.

동양에서도 역시 그런 노력은 계속되었는데, 중국에서는 10을 48번 곱한 1048 ‘극’이라는 수가 가장 크다고 여겼고,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 가의 모래알 수보다도 많다는 ‘항하사’를 찾아냈다. 10을 52번이나 곱한 수 1052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커 인간이 도저히 셀 수 없다는 ‘무량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로 생각하지만 사실 수는 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수학에서는 ‘무한대’라고 부른다.

그런 무한대의 가치를 지녔을까?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은 국내에서 건물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따라서 무량수전 건축 무렵에 공민왕이 쓴 것으로 알려진 현판도 자연스럽게 국내 최고의 현판이 되는 셈이다.

그로부터 건물에 편액을 붙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른바 편액의 효시인 셈이다. 그러니 무량수전 현판 하나만 따로 국가문화재가 되어도 하등의 이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는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역사적으로 인정된다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무량수전에 비할 바는 아니다.

1916년 무량수전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이것으로 건축 연대를 추측하지만, 건축 양식이 고려후기 건물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따라서 무량수전은 국내 최고의 건축물로서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 연구의 기준이 되는 건물이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중에서도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착시로 인한 왜곡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건축구조를 만들기 위한 고도의 기법이기 때문이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고,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약간 경사지게 세운 것을 말한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의 기법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진 현상을 볼 수 있다. 또 귀솟음 기법으로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여 수평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막기 위한 고도의 수준 높은 건축기법에 속한다.

전각 내부 서쪽으로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배치한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대목(大木)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가구가 잘 드러난다.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각각의 목재들이 서로 균형 있게 짜 맞춰진 모습이 세상을 은유한 듯하다. 어떤 이는 무량수전의 천장에서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낀다고도 했다.

이렇게 자신 있게 천장을 노출시키려면 각각의 부재가 아름답게 디자인되어야 하고 정확하게 짜 맞추어져야 하므로 노력과 시간이 배가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옛 목수들은 이런 건축물을 즐겼던 모양이다.

무량수전 내부 바닥은 원래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이라는 유리를 깔아서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녹유전은 바로 이런 극락세상을 표현한 장엄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니 무량수전은 현존 세상이 아니라 극락세상을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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